월드컵 때문에 일어난 '전쟁', 축구로 풀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벌어진 '축구전쟁'

등록 2018.07.14 13:46수정 2018.07.1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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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국가들은 백성들의 충성을 확보하고자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했다. 자신들이 신의 대리인인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종교적 연출도 서슴지 않았다. 강력한 형법을 제정해 백성들을 겁주기도 했다. 일례로, 조선시대에는 신분증명서인 호패를 제시하지 못한다 하여 참수형에 처한 시기도 있었다.

현대 국가들은 그런 억지스럽고 과도한 방법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도 국민 개개인의 동선과 일상을 파악하는 게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도 주기적으로 열리는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를 활용해 애국심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 A매치 경기가 열리면 대중이 자동적으로 열광과 애국심에 빠져드는 일이 많으니, 국가 입장에서는 이보다 편리한 일이 없을 것이다.

"특히 월드컵은 20세기가 낳은 대중 동원형 스포츠 이벤트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관객 동원 규모와 그 열기라는 측면에서, 월드컵은 올림픽을 상회하는 엄청난 대중적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월드컵과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는 국가의 내셔널리즘 재구축의 시도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 <동양정치사상사> 제4권 제2호에 실린 서강대 김수자 교수의 '현대 한국 민족주의의 전개 양상: 월드컵과 열린민족주의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1930년 7월 13일 우루과이에서 최초 개최된 이래, 전 세계 대중을 환호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축구 월드컵의 마력 덕분에 특히 덕을 본 나라가 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에 뜻밖의 패배를 당한 독일이 바로 그 나라다. 일본과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인 탓에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마음대로 퍼트릴 수 없는 이 나라 입장에서, 축구 월드컵은 애국주의를 한껏 확산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가대항 스포츠 경기는 공식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민족주의적 정서가 비교적 거리낌 없이 발산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로 작용하였다. 2차 대전 발발의 주범이자 패전국이었던 독일의 경우, 월드컵이나 유럽컵 대회에서의 승리는 독일인들로 하여금 스포츠 행사에 편승해 모처럼 주변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서 마음 편하게 다시 조국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해주었다." - 위 논문.

이렇게 월드컵을 활용해 20세기 전반부터 국가권력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대중의 애국심을 고양시키고 있지만, 가끔은 대중의 열기를 통제하지 못해 국가권력들이 낭패를 겪을 때도 있다. 월드컵으로 인한 대중적 열기에 휩쓸려 국가가 전쟁에 동원된 사례도 있다. 국민이 아니라 국가가 동원된 사례였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벌어진 축구전쟁이 바로 그런 사례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벌인 축구전쟁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김종성

1970년 월드컵 당시, 홈팀 멕시코를 제외하고 북중미·카리브해 지역에 배정된 본선 티켓은 1장이었다. 그 1장을 얻기 위해 이웃나라인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1969년 '홈 앤 어웨이' 경기를 갖게 됐다.

그런데 그 전부터 두 나라 국민들은 감정이 좋지 않았다. 영토는 온두라스가 엘살바도르의 5.3배인 데 비해, 인구는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의 1.4배였다. 엘살바도르의 인구밀도가 더 높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땅 없는 엘살바도르 농민들이 온두라스에 잠입해 토지를 불법 개간하는 일이 많았다. 1969년 초를 기준으로, 30만의 엘살바도르 불법 이주민들이 온두라스 전체 농지의 20%를 차지했다.


그래서 온두라스 국민들의 감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국민 정서에 밀려 온두라스 정부는 엘살바도르인들을 강제 추방했다. 이 때문에 양국 국민들의 감정이 폭발 직전까지 도달한 상황에서, 월드컵 지역예선 1차전이 1968년 6월 8일 온두라스에서 열리게 됐다.

"경기 전부터 두 나라는 달아올랐고, 온두라스 홈팬들은 엘살바도르 축구팀을 괴롭히기 위해 (선수들이 밤에 잠을) 잘 수 없도록 호텔 근처에서 급조된 축제를 벌이며 소란을 피운다." - <중남미연구> 제36권 제2호에 실린 고슬기의 '국내 소설에 나타난 중미의 축구전쟁.'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밤잠을 설친 상태에서 경기에 임했고, 결과는 온두라스의 1-0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경기 직후, 엘살바도르에서 어느 소녀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보도되자 "축구 경기에 실망한 나머지, 소녀가 자살했을 거"라는 추측성 소문이 확산되면서 엘살바도르 국민들 사이에 분노와 복수심이 확산됐다. 이 상태에서 일주일 뒤인 6월 15일, 엘살바도르에서 2차전이 열렸다.

"복수심으로 무장한 성난 홈팬들은 온두라스 팀의 투숙 호텔에 죽은 쥐와 썩은 달걀 등을 던지고 소란을 피워 잠을 못 자게 한다. 안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나선 온두라스 팀에게 엘살바도르는 3-0의 대승을 거둔다."

"수백 명의 엘살바도르 극성팬들은 온두라스 팀의 버스를 국경까지 따라가며 폭력을 가하고 괴롭힌다. 온두라스 대표팀이 당한 피해를 목격한 (온두라스 측의) 국경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여, 주변의 무고한 엘살바도르인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고 그중 일부는 사망하기까지 한다." - 위 고슬기 논문.

불법 이민 문제로 악화된 두 나라 국민들의 감정 상태가 월드컵을 계기로 그렇게 폭발했던 것이다. 그런데 1승 1패이고 온두라스가 1득점, 엘살바도르가 3득점이므로 지금 같으면 엘살바도르가 아이티-미국 전 승자와 최종 예선을 치렀겠지만, 그때는 그 규정이 없었다. 추가로 3차전을 치러야 했다. 이게 화근이 됐다.

6월 27일, 제3국인 멕시코의 아스테카 스타디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에서 원정 응원 온 관중보다 멕시코 경찰 병력이 훨씬 많이 운집한 가운데 3차전이 열렸다.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엘살바도르가 3-2 승리를 거뒀다. 이날 두 나라 국민들은 멕시코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켰고, 엘살바도르는 선전포고를 발포했다. '축구 전쟁'이 선포된 것이다.

"7월 14일 엘살바도르 군이 온두라스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발한다. 엘살바도르 공군은 테구시갈파의 톤콘틴 공항을 폭격하여 온두라스 공군 병력의 80%를 무력화시키고, 온두라스 군보다 더 많고 정예화된 육군을 투입해서 수도로 진격한다. 7월 15일 소도시들을 점령하면서 수도 테구시갈파 근처까지 접근해 오자, 온두라스 군도 다음날 반격을 시작한다.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온두라스 비행편대가 낙하산을 투입하여 적의 보급로를 끊는 데 성공한다." - 위 고슬기 논문.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극적인 화해

 아스테카 스타디움.
아스테카 스타디움. 위키백과

일반적인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대중의 월드컵 열기를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지만, 이 사례에서는 거꾸로 대중의 열기에 국가권력이 휩쓸려 전쟁에 동원될 수도 있다는 게 나타났다. 송병록 경희대 교수의 '전쟁, 스포츠 그리고 국제정치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는 이 예외적인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간의 축구전쟁은 직접적으로는 스포츠 경기가 전쟁을 야기한 것이지만, '개개의 전쟁은 국가가 시작하는 것이지만, 전쟁 그 자체는 민중이 만드는 것이다'라는 영국의 정치학자 필립 윈저(Philip Windsor) 말의 적실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 <정치·정보연구> 제20권 제1호.

필립 윈저의 말처럼 민중이 만든 그 전쟁은 양국 정부가 '원치 않은 전쟁'이었다. 사실, 두 나라는 싸우면 안 되는 관계였다. 두 나라 정부는 미국이 만든 독재정권들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이익이 아닌 양쪽 민중의 감정 때문에 싸우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미국이 급히 중재에 나섰고, 개전 4일 만인 7월 18일 종전이 선포됐다. 양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가 특히 놀랐을 것이다.

그렇게 전쟁까지 치르며 멕시코 월드컵에 진출한 엘살바도르는 A조 예전에서 소련·멕시코·벨기에를 맞아 3연패를 기록했다. 0득점에 9실점이었다. 온두라스 국민들은 3연승을 거둔 것 같은 기쁨을 만끽했을 것이다.

 엘살바도르의 선제공격에 맞서 온두라스 정부가 발포한 선전포고문.
엘살바도르의 선제공격에 맞서 온두라스 정부가 발포한 선전포고문. 위키백과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지역예선 때도 양쪽 대중은 두 나라 정부가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상황을 연출했다. 이번에는 과거와 정반대 상황이었다. 우리가 언제 전쟁했느냐는 식의 평화적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스페인 대회 때부터는 출전권이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1장이었던 북중미 티켓이 2장으로 늘어났다. 이것이 두 나라 대중이 축구를 매개로 화해하는 계기가 됐다.

"두 나라는 12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역 예선전에서 맞붙고, 0-0으로 승부를 가르지 못한다. 하지만 감동은 그 이후에 찾아온다. 이미 (본선) 출전을 확정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두라스는 멕시코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뛰었고, 결과적으로 엘살바도르가 2위를 할 수 있도록 도우며 강호 멕시코와 0-0 무승부를 이루어낸다.

이에 온두라스는 지역예선 1위로, 엘살바도르는 멕시코와 승점 1점 차이 2위로 사이좋게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하는 데 성공한다. (중략) 이렇게 온두라스 팀은 세계인들과 특히 엘살바도르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두 나라 간의 원한은 점차 풀어진다." - 위 고슬기 논문.

대중을 조종하는 정치권력의 노하우도 발달했지만, 대중의 역량도 정치권력이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지 않게 성장했다. 멕시코 월드컵 때의 축구전쟁과 스페인 월드컵 때의 극적 화해는 국가권력이 스포츠를 이용해 대중을 조종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기회를 활용해 대중이 국가권력을 움직일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축구전쟁 #월드컵 축구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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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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