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도서출판흔
- 책 제목이 인상적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 때문에도 SNS 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일단 나는 밥처럼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 오늘 떡볶이를 먹었다고 내일 안 먹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주식처럼 먹고 있다. 나는 '기분부전장애'라는 경도 우울증을 앓고 있다. 얕은 정도라고 해도 우울이 파도처럼 왔다 갔다 한다. 심각하게 우울한 날에는 죽는 상상도 한다.
그러다가 친구가 그만하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하면 난 또 신나서 떡볶이를 먹으러 간다. 5분 전에는 죽고 싶어 하다가 5분 뒤에는 너무 맛있다면서 떡볶이를 먹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이게 말이 되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떡볶이는 맛이 있다. 그런데 나 역시 우울증 환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거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면 그 힘으로 자살을 선택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봤다.
그러니까 우울하면 계속 우울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마르텡 파주의 <완벽한 하루>라는 책을 구해 봤다. 25살짜리 남자가 아침에 권총으로 자살하는 상상을 하면서 일어난다. 하루종일 죽음을 생각하는데 심각하기만 한 게 아니라 재미있다. 작가는 이런 모든 것이 한데 모인 게 인생이고 모든 게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 그래 행복과 불행이 따로 떨어지는 게 아니구나, 우울하다가도 배고픔을 느낄 수 있고 죽고 싶다가도 웃긴 말을 하면 웃을 수 있는 게 인생이구나, 당연한 거구나 받아들이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사실 떡볶이는 그렇게 모순적인 감정에서 지어보았다. 슬픈 마음인데 제목을 위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더라."
- 나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제목에서 오히려 좀 더 희망적인 느낌을 받았다. 자리를 딛고 일어나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상상을 하면서."그렇게 해석하시는 분들도 있더라. 결국 살고 싶은 마음 아니냐고. 그것도 맞다. 삶과 죽음은 공존하는 거니까. 정말 죽고 싶다면 이런 마음도 들지 않겠지. 당장 죽어버리겠지."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일지를 기록한 책이다. 상담은 언제 처음 시작하게 됐나."2017년 6월부터 상담을 받고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내원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서 증상을 물어본다. 약은 부작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내게 약이 맞는지 아닌지 알아보고 약의 용량도 조절하고 그러면서 점차 내게 맞는 약을 찾아갔다."
- 10년 동안 '정신과를 전전했다'는 말이 책에 나온다."맞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상담 등) 시도를 많이 해봤다. 대학교에 있는 무료상담센터도 이용해봤는데 잘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때가 22살이었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내면을 처음 본 사람에게 용기를 내 털어놓았는데 상처를 받고 돌아왔다. 오히려 그 대답들이 나를 더 무너지게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엄청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 뒤로 무기력해 있다가도 3~4번 정도 더 다른 곳에 다녀봤다.
증상만 간단하게 파악하고 바로 약물 처방을 해주는 병원도 있었다. 시행착오를 겪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 아예 다니지 못했는데 오히려 상태가 악화되더라. 작년에 그게 극에 달했다. 밤마다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폭식하고 울고, 폭식하고 울었다. 그럼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멀쩡하게 회사에 갔다. '나 우울증 맞아? 나 너무 일상에 감사할 줄 모르고 예민한 것 같아'라는 생각에도 휩싸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근처 정신과를 찾아갔다. 이번에도 별로면 다시 상담을 받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우연히 좋은 분을 만났다. 이후 지금까지 1년 동안 상담을 받고 있다."
- 지금은 어떤가."동굴을 파는 듯한 우울감은 사라진 상태다. 아, 책에 뚜렷한 결말을 내지 않았다. 이렇다 할 결말이 없는 게 별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게 좋았다는 분들도 있더라. 난 우울증이 일종의 난치병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데 그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어렸을 때부터 유전성 아토피를 앓고 있는데 지금도 여기가 (백 작가는 팔을 보여주었다) 빨갛지 않나. 아토피는 난치병이다. 불치병은 아닌데, 낫기 힘든 병이고 평생 관리를 해야 하는 병이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그게 어떻게 하루 아침에 없어지겠나. 이런 걸 안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계속 관리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상담이든 약물 치료든 한 번 시도를 해보고 맞지 않아 마음을 접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나."일단 마음이 닫힌 사람에게 억지로 권유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도 확실히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 싶은 친구가 있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 내 말이 불쾌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간다는 것 자체가 '내가 비정상인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회기 때문에 하늘이 무너지는 일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해한다. 나는 내가 상담 받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가 들었던 좋은 이야기들, 친구의 고민과 맞닿은 이야기들을 하는 거다.
그런데 예약까지 하고 당일에 가지 않은 친구도 있다.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용기는 남이 꺼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준비가 안 됐고 용기가 없는데 억지로 가는 건 스스로를 더 괴롭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 마음을 치료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자신과 맞는 병원을 찾아 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노력하는 게 힘들 때면, 나처럼 옆에서 대신 괜찮은 병원을 알아봐줄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내원해서 불편함이 느껴지면 중단하고 나와도 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도 된다."
-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맞다. 우울증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정신병'이라는 말을 장난처럼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우울증을 감추는 분위기가 싫었다. 그게 자기 약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더라. 몸에 상처가 나거나 부러졌을 때 몸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처럼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골절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연고를 바르거나 누구에게든 털어놓아야 한다. 내 잘못이 아니고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상처가 났는데 곪고 썩을 때까지 계속 놔두면 당연히 나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오래 안고 살았다면 빨리 치유되는 게 더 이상하다.
만일 몸이 조금 나아져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샤워하기를 추천한다. 조제 작가님의 <우울증이 있는 우리들을 위한 칭찬책>(아래 <칭찬책>)은 내가 한 모든 일을 다 칭찬하는 책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샤워하는 일도 힘들다. 큰 도전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다리가 다쳤는 데도 재활치료를 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지 않나. 내가 마음이 아파서 몸도 움직이기 힘든데 샤워를 하고 하늘을 봤다면, 그것 역시 엄청난 일인 거다. 또 밖에 나가서 나무 보고, 풀잎이나 꽃을 보는 일처럼 일상에서 생동감을 느끼는 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 말씀하신 <칭찬책>을 비롯해서 요즘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내는 독립 출판 에세이나 '이런 삶도 괜찮다'는 느낌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말하면 편해진다. 혼자 안고 있을 땐 엄청난 일인 것처럼 보이는데 말을 하면 별 거 아닌 일이 되기도 한다. '나 이런 상태다'라고 솔직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다. 드러내는 사람이 많을수록 점점 더 자연스러워 보이겠지. 지금은 감춰뒀던 걸 드러내는 변곡점에 있지 않나 싶다."
"이것도 나라는 걸 소중한 사람들이 알아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