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으로 출근(?)할 때마다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던 프리다 칼로
한성은
오늘도 숙소 앞에 있는 프리다 칼로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며 맨해튼으로 출근(?)했다. 세계 예술의 중심도시다운 그래피티다.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에 그려진 프리다 칼로라니. 그녀의 작품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아니지만 그녀는 평생 멕시코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헌신했고, 레프 트로츠키를 숨겨주기 위해 자신의 집을 내어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는 특히 뉴욕에서 회자될 때 가장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체 게바라의 가족들이 이야기 했듯이 정신은 없고 이미지만 소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중에게 잊히고 사라지는 것 보다는 아이콘으로 남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프리다 칼로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나는 참 인생을 쉽고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덕분에 '그래, 내가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야' 하고 쿨하게 흘려보낼 힘도 생긴다. 심지어 오늘은 뉴욕 공연 예술의 1번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는 날이다. 발걸음이 가볍지 않을 수가 없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다니<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2001년 겨울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한국에서 초연을 하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기 위해 학교 앞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돈으로 S석 티켓을 두 장 샀고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르는 2CD로 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도 샀다. <오페라의 유령> 프랑스어 번역판과 영어 번역판을 모두 읽었고 전곡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게 되었을 즈음 LG 아트센터에서 윤영석과 김소현의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큰 공연장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대한민국 초연이었고, 윤영석과 김소현도 당시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데뷔하는 뮤지컬 신인들이었다. 모든 것이 설렜던 처음이었다. 그날 내가 입었던 옷, 그날의 차가운 공기, 2층 객석에서 들리는 공연장의 작은 소음들이 1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