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즐기는 월드컵, 한국과 달랐던 점

등록 2018.07.18 12:12수정 2018.07.1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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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월드컵이 끝났다.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이 꿈의 축구 제전은 많은 감동 스토리와 이변을 쏟아 냈다. 한국축구가 2002년만큼의 성과까지는 아니더라도 16강까지 진출하기를 염원했던 한국인들은 못내 아쉬웠지만,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세계 최강 독일을 무너뜨린 것만으로도 승리에 대한 무한 갈증은 어느 정도 풀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물며 외신들도 이 경기를 이번 월드컵이 만들어낸 이변 중 최대의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니.


캐나다에 온 후 벌써 2번의 월드컵을 지켜 보았다. 한국과는 낮과 밤이 정반대인 이곳에서는 한국에서라면 밤잠을 설쳐가며 봐야 할 시간에 편안하게 중계를 볼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월드컵도 러시아와의 시차가 7시간 내외라 한낮 경기면 아침에, 저녁 경기면 대낮에 볼 수 있었다. 다만, 여기 방송사들이 월드컵에 대한 열정이 한국만큼은 미치지 못한 탓에 토요일, 일요일 오전시간에 걸리는 경기만을 생중계로 볼 수밖에 없는 고충도 있었다.

월드컵 중계권 탓에 차단된 TV생중계 시청을 가능하게 해주는 무료소프트웨어 덕에 한국방송사의 중계를 원없이 보게 된 것도 행운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것은 한국말로 이어지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중계와 해설이었다. 캐나다 방송사가 아무리 특별 편성을 해서 모든 경기를 다 보여줘도 절대 기대할 수 없는 특전이랄밖에.

여러 민족과 인종이 어우러져 사는 이민자의 나라 캐나다가 축구에서 한국보다 나은 점이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월드컵 소식을 길거리에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월드컵에 대한 방송사들의 데면데면한 태도 때문에 맛본 실망감도 이런 색다른 경험으로 충분히 보상받는 느낌이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2~3주 전쯤 되면 길거리나 마트에 여러나라 국기를 파는 행상이나 점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예선전을 치르는 기간 중에는 차량들이 자기 출신 나라의 국기를 달고 토론토 전역을 질주한다. 이렇게 토론토는 만국기가 펄럭이며 거리를 누비는 축제의 장이 된다. 작은 국기를 차창에 매단 차, 큰 국기로 자동차 보닛을 덮은 차, 양쪽 사이드 미러를 국기 디자인의 덮개로 감싼 차 등 다양한 국기 패션이 등장한다.

경기가 끝나면 이긴 나라의 깃발들이 좀 더 많이 보인다. 경기결과를 알 수 없다면 어느 나라 국기가 더 많이 보이는가로 결과를 예측해도 거의 틀림이 없다. 16강이 가려지기 전에는 태극기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그러다가 16강이 확정되면서 태극기도, 독일기도, 브라질기도, 아르헨티나기도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4강이 확정된 날부터는 프랑스, 크로아티아, 벨기에, 영국 등 4개 나라의 국기가 집중적으로 펄럭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둑판 무늬 같은 국장이 새겨진 크로아티아 국기가 더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축구 변방국가로 분류되는 나라가 4강까지 간 것에 대한 놀라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렇게 많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토론토에 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른 3개 나라보다 월등히 많이 국기가 펄럭였기 때문이다. 그저 통성명 정도 하고 지내던 사람이 나에게 자신이 크로아티아 출신임을  비로소 밝힌 것도 크로아티아가 8강에 오른 다음 날이었다.


프랑스가 역대 두 번째로 월드컵을 품에 안음으로써 한 달여 동안 지구를 떠들썩하게 흔들어댔던 경기는 모두 끝났다. 결승전이 끝난 후에 거리에 나가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토론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영 길(Yonge Street)에는 청,백, 적색의 삼색기가 넘쳐 났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단풍잎이 그려진 캐나다 국기도 간혹 프랑스 국기 물결 속에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월드컵 기간 내내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캐나다 국기를 매단 차량들이 띄엄띄엄 보여서 나는 혼잣말 처럼 되뇌었다.

"캐나다는 이번 월드컵에 참여 하지도 않았는데 저건 뭐지?"

여러 번의 의문 끝에 문득 대답이 떠올랐다. "그렇지 2026년에 캐나다에서도 월드컵이 열리는 구나!" 8년 후에는 3개국(캐나다, 미국, 멕시코)이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한다. 2002년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최초 공동개최에 이어 이제 두 번째다.

공교롭게도 나는 단 두 번의 공동개최국에서 월드컵을 맞는 행운을 누리게 된 셈이다. 그때가 되면 내 차에는 태극기와 캐나다기가 양쪽에 매달릴 것이다. 바라건대 두 나라 모두 성적이 좋아서 두 국기를 경기 기간 중 내내 차에 달고 달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성적과 무관하게 나는 두 나라의 국기를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달고 거리를 질주하련다. 내가 태어나고 살았던 나라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나는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이민 #월드컵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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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김태완입니다. 이곳에 이민와서 산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이민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그때그때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는 새로운 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자기 모국에서도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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