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백혈병' 희생자 부친의 눈물24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조정위 3자간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서명식'에서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 아버지인 반올림 황상기 대표가 소감을 밝히더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부터 황상기 대표, 김지형 조정위원장, 김선식 삼성전자 전무.
연합뉴스
이 서평 기사를 쓰던 도중에 24일 삼성 백혈병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2014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러 영화관에 갔을 때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을 봤던 기억이 스쳐갔다.
그때는 삼성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이렇게 사람들을 헐값으로 대우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을 몰랐다. 어떤 이는 삼성 관계자인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상영을 방해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SNS에 올렸던 기억도 있다. 영화가 개봉했었던 2014년은 여전히 그런 세상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면 가릴 수 있었던.
사실 공론화가 이만큼이라도 됐으니까 10년이 넘어서 이제라도 해결이 된 것이지, 책에서 소개하는 발암물질에 의해 희생된 노동자들의 사례를 보면 아직 문제가 모두 완결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12년 9월 27일에 일어난 구미시 불산 누출사고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다섯 명이 죽었고, 그 중 두 명의 노동자의 나이는 스물넷, 스물여섯에 불과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불산 사고의 경과를 따라가다 보면, 지난 9년 간 세월호 참사 같은 크고 작은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던건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람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은폐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노동건강연대 임준 교수는 스웨덴 사람에게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는데 그 스웨덴 사람은 '사람이 일하다 왜 죽나요?'라고 놀랐다고 한다.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3배 많고, 영국에 비해서는 15배 많다. 경제규모는 OECD 국가 중 11위인데 산재사망율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고 묻는다면 우리도 안 죽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거다.
'한국과 타 국가를 비교한 것은 '역시 선진국'을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여기서의 교훈이 '역시 스웨덴은 잘난 나라'도 아니다. 지구상 어딘가에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사람이 일하다 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경제 규모 11위인 국가가 산재를 예방하는 데 드는 자본이 부족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안전관리에 돈을 들이지 않는 것은 돈을 쓸 만큼 산재 예방의 필요가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안전보건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인간이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그는 '감수성'이라 대답했다. 안전장치와 관리 감독과 구조와 시스템을 제치고 감수성이라니. 그는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아파하는 감수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대답이 오래 남은 까닭은 죽음을 하찮게 보도록 연습되어진 우리 삶 때문이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사회보다 더 문제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다.'
사회적 재난에 무감각한 이들에게 '사람이 죽었는데'로 시작하는 말을 하면 듣기 싫은 잔소리를 듣는 것 마냥 손사레를 치며 '감성팔이'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죽지 않고도 일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일하다 죽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슬퍼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노동자, 쓰러지다 -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
희정 지음,
오월의봄, 2014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공유하기
"일하다 사람이 죽었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