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사람이 죽었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일하다 죽는 사회에 대한 르포르타주 '노동자, 쓰러지다'

등록 2018.07.27 19:13수정 2018.07.2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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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엇갈렸다. 10년 넘도록 쌍용차 부당해고에 저항해왔던 그는 2008년 사측과의 물리적 충돌 현장에도 있었다. 아직도 묵묵부답인 현실에 비관한 그는 목숨을 끊어버렸다. 30. 이 숫자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자가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또 다른 해고노동자들인 KTX 여승무원들은 12년 넘게 싸워왔다. 그러다가 최근에서야 왜 본인들이 복직할 수 없었는지, 누가 이렇게 자신들을 힘들게 만들었는지 알게 됐다. 사법부가 청와대와 교감하며 재판 거래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들은 지난 21일 본사와 특별채용 형태로 고용하는 방안으로 합의를 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가치는 헐값이다. 굳이 신자유주의라는 배후를 지목하지 않더라도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쉽게 회사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하다 소진 '당하는' 사회

'노동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이 이렇게까지 망가지고 있는 데에는 정부가 구실을 못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기업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든 정부의 개입이 없으면 기업 자신이 먼저 책임지는 일은 없습니다.'

'경영 상의 긴급한 이유'. 부당해고 논란이 있을 때마다 사측이 방어 논리로 쓰는 말이다. 그리고 상당히 자주 법원은 이런 사측의 논리를 인정해주곤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회사 입장에서 이 말은 맞는 말이다. 비용을 줄여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투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은 '긴급'한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 쓰러지다> 책 표지
<노동자, 쓰러지다> 책 표지오월의봄

<노동자, 쓰러지다>는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건강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노동자 건강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기획하고 활동가 희정이 기록한 르포르타주다.

저자가 찾아간 첫 현장은 조선소다. 조선 노동자들의 어떻게 일하는지 살펴보면 '위험의 외주화'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도저히 일을 진행할 수 없는 공간 같아 보여도 사람이 들어갈 수만 있다면 일을 해야 한다.

'이들에게 위험한 일을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소에서 만난 한 젊은 정규직 노동자는 자신을 15년 만에 들어온 신입이라고 소개했다. 원청회사는 예전만큼 사람을 뽑질 않는다. 기존 노동자들은 늙어간다. 오십 줄에 들어선 정규직 노동자들은 힘든 일을 꺼린다. 노동자들이 위험한 일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다만 특정 계층에게 위험이 전가되는 것을 눈감는 일은 치사하다.'

특히 툭하면 '귀족노조'니 '파업으로 매출손실 막대'니 하는 방식으로 보수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노동자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하다. 귀족노조니 이기적인 노동자니 하는 소리를 듣기에는 그들은 너무 많이 다치고, 죽는다.


 귀족노조라고 불리며 비난받기에는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너무나 쉽게 다치고, 쉽게 죽는다.
귀족노조라고 불리며 비난받기에는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너무나 쉽게 다치고, 쉽게 죽는다.Pixabay

책에서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자체조사 사례를 소개하는데, 울산 동구의 10개 병원을 찾아 산재처리 되지 않고 개별치료 중인 106건의 사례 중 40건이 작업 중 당한 사고임이 확인됐다. 또한 책은 조선소에서 일어난 수많은 산재로 인한 사망 사례 중에서 일부, 그러나 그냥 훑기에도 많은 사례들을 소개한다.

직접 소개하기에도 끔찍한 사례들 앞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특정 계층에게만 위험이 전가되는 것은 분명 문제 아닌가? 숫자로만 기사화되는 누군가의 부상, 죽음이 개별 사건으로 다가오는 순간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귀족노동자'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질 따름이다.


조선소나 건설현장 외에 겉으로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는 '민영화'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기업들은 경영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인력을 감축하고 시설경비를 경감하며, 안전 시스템을 축소시켰다. 그런데 이게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되어서 생긴 죽음은 책임 소재도 제대로 따지기 힘들어진다.

2011년 발생한 인천공항철도 사고로 사망한 다섯 명의 노동자는 철도공사의 자회사의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사고를 당한 작업자들은 막차 시간을 몰랐고, 철도공사 직원들은 그들이 막차 시간을 알 것이라고 여겼다.

막차를 운행한 기관사는 선로공사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작업자들은 야간 작업복조차 받지 못했다. 총체적인 소통 부재 앞에 책임을 묻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철도 사고는 여전히 예방되지 않고 빈번하다.

'소속이 없는 사람들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소통의 부재가 일의 촉박함과 맞물리면 사고가 된다. 다들 일을 찾아 떠돈다. 유일하게 붙박여 있는 것은 철도공사다. 그런데도 지휘감독 권한을 가진 철도공사는 사고가 나면 순진한 얼굴로 묻는다. "어? 작업 시간도 아닌데, 왜 일을 했대요?" 인천공항 5명의 죽음 앞에서 철도공사는 딴청을 부렸다. 사고 발생 직후 일부 언론은 '안전 불감증이 빚은 참사'라는 문구를 덧붙여 소식을 전했다.'

'한국에서도 그럴 필요가 없다'는 단순한 진리

'반도체 백혈병' 희생자 부친의 눈물 24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조정위 3자간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서명식'에서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 아버지인 반올림 황상기 대표가 소감을 밝히더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부터 황상기 대표, 김지형 조정위원장, 김선식 삼성전자 전무.
'반도체 백혈병' 희생자 부친의 눈물24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조정위 3자간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서명식'에서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 아버지인 반올림 황상기 대표가 소감을 밝히더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부터 황상기 대표, 김지형 조정위원장, 김선식 삼성전자 전무.연합뉴스

이 서평 기사를 쓰던 도중에 24일 삼성 백혈병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2014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러 영화관에 갔을 때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을 봤던 기억이 스쳐갔다.

그때는 삼성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이렇게 사람들을 헐값으로 대우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을 몰랐다. 어떤 이는 삼성 관계자인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상영을 방해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SNS에 올렸던 기억도 있다. 영화가 개봉했었던 2014년은 여전히 그런 세상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면 가릴 수 있었던.

사실 공론화가 이만큼이라도 됐으니까 10년이 넘어서 이제라도 해결이 된 것이지, 책에서 소개하는 발암물질에 의해 희생된 노동자들의 사례를 보면 아직 문제가 모두 완결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12년 9월 27일에 일어난 구미시 불산 누출사고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다섯 명이 죽었고, 그 중 두 명의 노동자의 나이는 스물넷, 스물여섯에 불과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불산 사고의 경과를 따라가다 보면, 지난 9년 간 세월호 참사 같은 크고 작은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던건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람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은폐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노동건강연대 임준 교수는 스웨덴 사람에게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는데 그 스웨덴 사람은 '사람이 일하다 왜 죽나요?'라고 놀랐다고 한다.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3배 많고, 영국에 비해서는 15배 많다. 경제규모는 OECD 국가 중 11위인데 산재사망율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고 묻는다면 우리도 안 죽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거다.

'한국과 타 국가를 비교한 것은 '역시 선진국'을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여기서의 교훈이 '역시 스웨덴은 잘난 나라'도 아니다. 지구상 어딘가에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사람이 일하다 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경제 규모 11위인 국가가 산재를 예방하는 데 드는 자본이 부족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안전관리에 돈을 들이지 않는 것은 돈을 쓸 만큼 산재 예방의 필요가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안전보건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인간이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그는 '감수성'이라 대답했다. 안전장치와 관리 감독과 구조와 시스템을 제치고 감수성이라니. 그는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아파하는 감수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대답이 오래 남은 까닭은 죽음을 하찮게 보도록 연습되어진 우리 삶 때문이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사회보다 더 문제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다.'

사회적 재난에 무감각한 이들에게 '사람이 죽었는데'로 시작하는 말을 하면 듣기 싫은 잔소리를 듣는 것 마냥 손사레를 치며 '감성팔이'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죽지 않고도 일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일하다 죽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슬퍼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노동자, 쓰러지다 -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

희정 지음,
오월의봄, 2014


##노동자,쓰러지다 ##건강할 권리 ##외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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