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흙인형(왼쪽)과 조선 분청자 문양남자가 비파를 연주하고 여자는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른다. 오른쪽 분청자 문양을 보면 마치 아이가 그린 것처럼 쓱쓱 그렸다. 정확히 무엇을 그린지는 알 수 없다.
국립경주박물관·동아대학교박물관
오산리 사람 얼굴 흙인형을 볼 때 우리는 이런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한 신석기 장인이 그릇을 빚고 있었다. 그 옆에서 그의 자식이 흙을 한 줌 떼어 와 아버지처럼 쓱쓱 빚었다. 아버지가 가만히 보니 사람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묻는다.
"아이고 우리 아들, 곧잘 빚는구나. 그런데 흥수야, 대체 무얼 빚은 거냐?"
흥수가 눈을 뚱그렇게 뜨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이게 뭔지 모르세요?"
내가 볼 때 오산리 흙인형은 아이가 어떤 계산도 없이, 직관으로 쓱쓱 빚은 것이다. 그래서 이 흙인형은 '씨족 수호의 신상'도 아니고, '신앙 의식'에 쓴 것도 아니고, '신석기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오산리 흙인형에서 '신의 형상'보다는 어린이의 '직관', 어린이에게 찰흙을 쥐어줬을 때 순식간에 빚는, 그러한 어린이의 직관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눈과 입 양볼을 엄지로 누를 때 어른처럼 머뭇거리지 않고, 어떤 계산도 하지 않는다. 이 직관의 예술, 순간의 미술은 신라 흙인형으로 이어지고, 다시 분청자 문양으로 이어진다. 한국미술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익살과 생명력'은 흔히 통일신라 시대 흙인형에서 찾는다. 그런데 나는 그 기원과 시작을 그로부터 한참 더 내려잡아 신석기 시대 양양 오산리(기원전 6∼5천 년 전) 흙인형에서부터 잡고 싶다. 이 흙인형에서 우리 미술의 '익살과 장난기'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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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리 흙인형, 과연 이것이 신의 형상일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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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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