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인문학교에서 이야기하는 김예슬 씨(좌)
김예슬
배움의 물꼬를 스스로 트는 힘은 일찍이 깨우쳤다. 학교 대신 '홈스쿨링'하며 육 년을 살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제안했고, 그녀가 선택했다. 열네 살 때였다.
"어린 나이인데도 고민 많이 했어요. 다 가는 학교를 안 간다는 거. 그래도 학교 안 가는 게 좋으니까요. (웃음) 부모님을 믿는 마음도 컸고요."
처음에는 멍 때리는 날이 많았다. 부모님은 시간표를 짜주지 않았다. 밤늦게 공부하는 또래를 보면 혼자 다른 세계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일이 년 멍 때리니 질문이 하나 생겼다.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일까?' 자연스레 몸이 집 밖으로 향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만나 함께 여행하고 공부했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글 쓰는 OO'으로 살고 싶다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게 좋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생각에 빈칸을 남겨두었다. 오년 전, 귀농하며 그 칸이 채워졌다. 부모님은 언제든 그 칸을 새로 쓸 수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그녀는 농부인 게 좋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라는 서정홍 시인의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두 번 하는 신문 연재도 그 말의 힘을 빌려 시작했다. 거친 손을 부끄러워하는 세상일수록 흙 만지는 농부의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저는 낭만이라는 말 되게 좋아해요. 근데 가끔 '네 이야기를 들으면 꼭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같다'라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면 '나한테는 평범한 일상이고 현실인데 왜 누군가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되는 거지? 내가 정말 다른 세상에 사는 건가?' 하면서 내 얘기 하기가 조심스러웠어요. 고민했죠. 내가 생각하는 낭만은 뭔가. 낭만은 뭔가 즐겁고 아름답고 편안하기만 한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힘이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람들 앞에서 내가 생각하는 낭만을 얘기하는 게 편해졌어요. 내 삶에도 당당해졌고요.
충분히 제가 사는 모습도 평범해요. 그냥 농부에요. 농사짓고 좋아하는 글 쓰고 기타 치고 노래하고 멍때리고 앉아있거나. 그 속에서 뭔가 나 스스로 낭만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게 시골살이를 지속하는 힘이 돼요. 그래서 지금도 전 어디 가면 낭만이라는 말 좋아한다 얘기해요, 그냥. 이제는 눈치 덜 보고."
사는 일에 어디 지도가 있겠냐만, 1.9%의 이십대 농부로 살아가는 건 나침반 없이 길을 가는 것과 같았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때면 멍 때리거나 글을 썼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면 인생이, 낭만이 별건가 싶다. 멀리 내다보며 불안해하기보다는 지금에 머무르며 감사한다. 땀 흘리고 일하나 나무 아래 차를 마시나 기타를 치나 그녀가 늘 '낭만 농부'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