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은 그녀... 단지 '구남친' 때문일까

[주장] 몰래 찍고 퍼뜨린 '리벤지 포르노', 몰래 본 당신도 가해자다

등록 2018.10.05 14:18수정 2018.10.0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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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씨는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구 씨를 협박했다

최 씨는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구 씨를 협박했다 ⓒ pixabay

  
두 사람이 관계를 맺었고, 한 사람만 무릎을 꿇었다. 영상의 존재는 곧 남성에겐 무기가 되고, 여성에겐 두려움이 됐다. 30초 분량의 성관계 동영상으로 가수 구하라 씨를 협박한 미용사 최아무개씨 이야기다. 이 여성 연예인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지난달 13일 구씨 자택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최 씨는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서로 상처 사진과 진단서들을 공개하며 진실 공방을 벌였다. 체격 차이, 확연한 힘의 차이 등 수상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구씨는 18일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소모전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4일 최씨가 핸드폰에 저장한 성관계 영상으로 구씨를 협박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경찰 신고 전후 '실망하게 하지 않는다'며 <디스패치>에 두 통의 제보 메일을 보냈던 것도 알려졌다. '실망하게 하지 않는다'란 최씨의 말, 갑작스레 사건을 덮으려던 구씨의 모습이 이제야 이해된다.

여성 연예인에겐 피해 사실 고발보다 빠른 수습이 더 절실했다. 그녀는 '쌍방과실'이라며 사건을 덮어야 했고, 동영상을 숨겨야 했다. 폭행 가해자라는 오해보다 동영상 유출에 따른 피해가 더 가혹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협박이 될 수 없어야 한다

관련 보도가 나오자 최씨 쪽은 "동영상을 먼저 찍자고 한 것은 구씨"라고 반박했다. 동의 여부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와 상관없이 동영상을 유포하려고 한 최씨의 행위다. 이것은 범죄다. 피해 여성의 잘못이나 죄가 아니다. 이 일로 타격을 입는 것은 가해자 최아무개여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동영상 속 여성이 늘 죄인이었다. 한 여성을 찍은 불법동영상에는 '국산 포르노'란 이름이, 여성의 특징을 대상화한 자극적인 표현들이 덧붙는다. 호기심으로 클릭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영상은 더욱 멀리 퍼지고, 여성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제목들은 계속 더해진다. 2차 가해는 끝없이 늘어난다.


최씨의 협박 사건은 이런 식의 디지털 성범죄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관련 기사에는 구씨과 연관 지은 자극적인 제목이 붙고, '최씨의 핸드폰 속 영상을 공유해달라'는 댓글이 달린다. 협박을 한 사람은 최씨지만, 그와 함께 피해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가해자는 최씨 한 사람이 아닌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몰카·리벤지 포르노 완전 근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후 여성가족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또 7월 28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몰카 유통과 불법 야동 웹하드를 다뤘다. 


방송 다음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웹하드 카르텔 디지털 성범죄산업의 특별수사를 요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8월 26일, 담당부처가 직접 답변하는 요건인 추천자 수 20만 명을 충족하자 한 달 뒤 민갑룡 경찰청장은 청와대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에서 수사 상황을 설명했다. 최근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검찰에게 몰카 유포자는 징역형을 구형하는 등 엄정 대처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촬영자와 유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용자 역시 공범이다.

그들도 공범... 당신은 아니길 바란다
 
 불법촬영 예방 광고

불법촬영 예방 광고 ⓒ 여성가족부

  
최씨의 행동을 디지털 성범죄로 완성하는 것은 이 사회다. 호기심으로 동영상을 찾아 클릭하고, 친구에게 공유하는 개인들이다. 한 번 인터넷에 유포된 디지털 성범죄 동영상들은 수많은 사이트로 퍼져나간다.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해도 '모든 영상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포기하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동영상이 퍼질수록 피해자들은 주위 사람이 자신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워한다.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많다. 아무도 불법성관계 동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피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연예인 생활을 끝내게 해주겠다'는 최씨의 발언이 나올 수 있던, 구씨에겐 실질적인 협박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게다가 현재 관련 글에는 '동영상을 보고 싶다'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음란물 사이트에 '닮은 꼴'이라며 다른 동영상이 올라와 2차 가해가 일어나진 않을지 걱정이다. 

동의 없이 찍은 동영상, 동의 없이 유출된 동영상은 '범죄 영상'이다. 국산 포르노라는 이름으로 보는 것 역시 범죄다. 디지털 성범죄에 반대하고 최씨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데에 동의한다면, 공범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범죄자가 아니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청년매체 고함20>에도 실립니다.
#불법촬영범죄 #디지털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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