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앞서 지난 봄 노원 스쿨미투가 불거졌다. 이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5월 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북부교육지원청에서 최근 발생한 용화여고 미투 운동 해당 교사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온라인 지지자들의 메세지를 벽에 부착하고 있다.
이희훈
9월 11일 인천의 B여중에서 교사에 의한 성희롱, 성차별 행위들에 대한 '스쿨(School) 미투(me too)'가 있었다. 인천지역의 여러 중·고등학교에서도 제보들이 이어졌다.
B중학교의 사건이 발생하고 인천지역 여성단체들은 발 빠르게 대응하여, 교육청 방문과 교육감 면담, 관련기관 및 학부모와 여성단체 등이 참여한 '집단 간담회', 해당 학교들에 성교육 실시와 가해교사 분리, 교육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하였다. 이에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합의하였고 B중학교의 피해학생 전수조사를 교육청과 경찰청이 진행하였다.
그러나 장학사들과 학생이 마주 앉아 피해사실을 종이에 적는 방식이나 "책임질 수 있는 것만 써라", "정확하게 '미투'인 것만 써라", "이걸 쓰면 너는 경찰 조사를 받아 피곤해질 수 있다."는 등의 언행은 학생들을 더욱 불안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이 방식과 언행 자체가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없는 것, 피해자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이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또한 학부모와 여성단체들은 학교장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교육감을 위원장으로 대책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결국 부교육감을 위원장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교육과정에서 발생한 학생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교육감이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는 매우 실망스럽게도 정치적인 행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교육청의 이 같은 처사는 인권감수성이 엉망임을 보여준다.
인천 경찰서도 제법 빠르게 피해학생들을 무기명으로 전수조사하고,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하였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를 피해자와 분리조사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특정'해야 하므로 기명으로 다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이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계관계, 성폭력 피해자들의 심리상태를 외면한 교육청과 마찬가지의 무지하고 몽매한 대응, 인권감수성 제로의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경찰청에 질의서를 통해 피해자들의 신원보장, 무기명조사를 통해 가해자로 판명된 경우 인지수사를 하라는 등의 의견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계획을 묻자, 기명수사 대신 '가명조서제도'를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해당 학교들은 제보 학생을 색출하는 것에만 집중하였고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를 학생들로부터 격리하는 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는 반드시 격리되어야 하지만 "교사의 경우 학생들과 분리하면서 교원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수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해자를 봐야 하는 학생들의 괴로움이 지속되고, 교사들의 협박성 발언으로 인한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다. 전남 광주에서 '스쿨 미투' 발생 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와 학생들을 바로 격리하고 지목된 가해자 전원의 경찰 조사를 의뢰, 처벌받게 한 것과 대조적이다.
나아가 B중학교의 경우는 성폭력예방을 위한 가정통신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성폭력 예방책'을 나열함으로써 마치 성폭력을 피해자가 예방 가능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인천의 스쿨 미투 학교에서는 영어시험에 성폭력 피해자인 연예인을 사례로 제시하는 등, '여성폭력'에 대한 저열한 수준의 인권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인천의 '스쿨 미투' 운동은 이처럼 학교 내 교사에 의한 성폭력이 만연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교육청, 경찰청, 해당 학교들의 저급한 인권감수성 및 여성폭력 감수성을 낱낱이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인천의 여성들은 싸움을 통해 여성운동의 과제를 발견하면서 모두 함께 성장 중이다.
'스쿨 미투'는 어쩌면 성인 여성들의 개인적인 '미투' 운동보다 더 어려운 싸움이기도 하다. 여자와 남자라는 위계,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계, 어른과 청소년이라는 위계 등 여러 가지 위계구조가 중층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이던 학내의 교사 성폭력을 사회적 이슈로 불러내고 '스쿨 미투'를 확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다층적인 위계를 뚫고 나온 피해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우리는 불꽃이다"라는 포스트잇을 교무실 문과 게시판에 붙여가며 싸우고 있다. 이들은 불편/부당 -> 인지 -> 각성 -> 실천/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 중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어머니들' 역시 딸들의 성장에 힘입어 각성하고 실천하는 과정에 있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여성단체들과 연대하여 교내 성폭력의 근절을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여성단체들도 그동안 분명히 존재하여 왔었고, 어쩌면 여성운동가인 자신들도 당했을 법한, 그러나 각성하지 못해 지나쳤던 교내 성폭력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며, 이것이 여성운동의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여성운동은 그 세대가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 재구성, 재생산되고 있다.
'미러링'을 통해 남성들의 여성 혐오를 밝혀내고, 강간사이트를 밝혀 조사 및 폐쇄하게 하고, '불편한 용기'라는 '붉은 시위'를 통해 디지털 성폭력이 여성들을 성적 대상물로 전락시킴은 물론 그 자체가 이미 '성폭력'임을 알려왔다. 이와 같은 새로운 급진적 여성운동은 사회전반적인 성폭력 반대분위기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를 통해 여성운동과 상관없던 많은 여성들의 '미투' 운동을 촉발했다.
이 '미투' 운동은 '스쿨 미투'로 발전하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한 개인의 남성이 여성들을 집단으로 성폭력 할 수 있다는 점은 여럿의 여성들보다도 남자 하나의 권력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성과 여성의 비대칭적 권력관계의 투명한 반영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밝히고 진위를 가리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상처를 입을 수 있지만 결국 여성들의 '힘 갖추기(empowerment)'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의 인권은 한 발짝 더 나아갈 기회가 된다. 시련은 굴복이 아니라 저항을 가져오고 있다. 그것도 점점 더 많은 세대들을 통해서 그렇다. 여성운동은 세대 간 연대하면서 또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