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고사장에 시험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희훈
어느덧 2018년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시간의 속도를 절감하고 있었는데, 추워진다 싶더니만 벌써 오늘이 수능이란다.
내가 졸업한 후로 입시 제도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능을 인생의 가장 큰 관문으로 여기며 긴장하며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수능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평소보다 낮은 성적을 받았다. 눈앞이 새까매지는 느낌을 받으며 시험을 보았고, 시험장에 나와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했을 땐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수능의 여파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감정도 느끼며 우울감과 걱정으로 시간을 다 보내기도 했다.
딱 10년이 지난 지금은 대입이 인생에서,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뻗어있는 무수한 갈래의 길 중에 한 갈래의 길일뿐임을 알지만 그땐 알지 못 했기 때문이다.
물론 노력한 만큼 성적을 받게 되거나, 예상보다 괜찮은 성과를 거둘 수험생들도 많겠지만 상대평가의 특성상, 좌절감을 안게 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이들 중 그때의 나처럼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감정까지 느끼며 우울해할 이들에게 그 단 한 번의 시험이 내 인생의 수많은 가능성을 결정짓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얘기해주고 싶다.
물론,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무수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반복한다.
예컨대 나는 교사가 되고 싶어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결국 지금은 그와 상관없이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항공운항과를 졸업했지만 영어 강사를 하고 있는 친구, 공대에 진학했지만 플로리스트가 된 친구, 대학에 가지 않고 취직을 했다가 사업으로 성공한 친구 등 수많은 주변인들 중에서도 생각지 않았던 진로를 찾아 인생의 방향을 바꾼 이들은 무수히 많다.
사실 가장 아쉬운 것은, 총 12년간의 정규교육과정 속에서 삶에 여러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을 찾아가는 방법에도 여러 방향이 있다는 사실을 별로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계속 해서 반복되는 많은 시험들과, 가장 큰 관문의 시험인 수능시험이라는 경쟁 속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목표의식만 학습하게 되기에 나는 수능을 치른 후, 패배자라는 느낌에 좌절감을 맛봤던 것 같다.
수시 비중이 커지고 정시 비중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공정성 논란, 최근 발생했던 성적 조작 사건 등 사회 속 현실이 불공정하다는 것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역시 노력한 만큼 시험 성적을 얻지 못한 수험생들을 힘들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교육 현실이 변화해야 할 일이다. 다양한 역량이 고루 평가받을 수 있는 건강한 경쟁의 공정한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교육과정 동안 경쟁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자아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나아갈 여러 방향들을 모색할 기회를 주는 교육 환경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변화를 계속해서 요구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교육현실을 당장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우선, 현재의 상황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와 좌절해있을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이들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로 격려를 보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지금 무수한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길목에 서 있는 그들이 당장의 성적으로 모든 미래가 결정되었다 생각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정말로 없기를 바란다.
당장 그때의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해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성적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가진 역량을 찾아 열심히 가꾸어낸다면 원하는 꿈에 가까이 다가갈 기회는 다른 여러 방향으로도 얻을 수 있음을 나 역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하는 만큼의 성적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긴 인생에 있어, 절대 '실패'가 아니다. 이후의 인생에서 어떤 삶을 살지, 무엇을 할지는 지금 주어진 시험성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건 상투적인 위로의 말이 아니다. 그 시절, 아까운 시간을 눈물과 좌절감으로 보내버린 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닿을 수 없는 이야기므로 나 대신 그 시절의 내 나이에 머물러있는 중인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진심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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