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씨름대축제 천하장사 결정전에서 상대방 선수를 이긴 박정석 선수(사진제공=통합씨름협회)
박경미
시련만 찾아온 시절
그 역시 당진을 떠나 씨름부가 있던 태안고로 진학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3년 내내 그는 후보 선수였다. 씨름부 선수 16명 중 아무도 이기지 못했던 그는 후보 선수로 있다가 더 이상 경기에 나갈 주전 선수가 없는 상황이 오자 그제야 주전에 앉게 됐다. 남들보다 늦은 출발을 메꾸기 위해 악착같이 운동했지만 그에게 시련만 찾아왔다.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을 했지만, 학교는 그를 선수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학교의 부당한 조치가 이어지자 그는 결국 6개월 만에 학교를 자퇴했다.
이때 그는 씨름 인생의 첫 스승을 만났다. 운동에 대한 후회로 얼룩진 그의 손을 당시 경남대 씨름부 이승삼 감독이 잡았다. 박 씨는 이승삼 감독을 따라 경남대에 진학했고, 2007년부터 경남대 씨름부를 이끈 모제욱 감독 아래에서 다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박 씨는 "이승삼 전 감독과 모제욱 감독은 '박정석'이란 사람을 선수로 받아들여준 첫 스승이었다"며 "내게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당당히 나를 '내 새끼'라고 말해주는 분들이었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충남 태안군청 실업팀에 들어갔지만 실업팀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운동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는 그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갔다. 박씨는 "'잘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지'라는 생각보다 '내가 어디까지 망가져야 운동을 그만둘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이때는 몸과 마음까지 모두 지쳤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결국 스트레스로 간 수치가 높아지면서 운동선수 부적합 판정을 받아 선수 생활에 위기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