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스피치를 했던 언론인 손석희 시간에 늦게 도착하여 연설 마무리만 들을 수 있었다
수피아
홍콩기자협회장이자 '시티즌뉴스' 편집장 크리스 영은 우산혁명 현장과 그 이후 변화된 중국과 홍콩 사회와 언론에 대한 연설을 했다. '우산혁명'은 2014년 9월 시위 기간 동안 홍콩 경찰의 최루탄 진압에 맞서 우산을 펼치는 것을 계기로 동맹 휴업을 한 24개 대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이 홍콩 중심가에서 두 달이 넘도록 이어나간 시위다. "우산혁명이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미 한해 전에 740만 명의 홍콩 인구 중 50만 명의 홍콩 주민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왔다"고 크리스 영은 전했다.
왜 홍콩 시민들은 길거리에 나온 것일까? 중국의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행정장관을 뽑는 선거 문제가 기폭제가 되었지만 그 외에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 침해의 우려가 있는 법률 조항, 홍콩 고등학교 교과목에 중국 공산당에 대한 찬양 내용을 담고 있는 국민교육 과목이 채택되지 않게 시위를 주도한 당시 17세 소년 조슈아 웡 등 중국에 대해 오랫동안 쌓인 불만이 터져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위가 중국에서는 생소한 일이라 중국 정부는 놀라워했다. 우산혁명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중국인들은 소수였고, 대부분의 중국 시민들은 중립적이거나 관망하는 자세였다"며 "해외 언론들 덕분에 홍콩 시민들이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크리스 영은 "우산혁명이 선거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으나 홍콩 시민들의 정신을 고양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당시 주윤발·양조위·유덕화 등 많은 홍콩 스타들이 시위대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여 중국 활동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조치에 대해 주윤발은 영화 촬영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돈을 조금만 벌면 된다"라고 웃어 넘겨 쿨가이로 회자되기도 하였다.
천안문 6.4항쟁을 지지 및 동참했던 홍콩 시민들
1989년, 베이징에서도 중국판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시위, 천안문 6.4항쟁이 있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부정부패 없는 정부를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외쳤다.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시민들도 결합하여 천안문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시 홍콩은 어땠을까?
크리스 영은 "홍콩에서도 1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거리시위에 참여하며 북경대 학생들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당시 시위는 중국의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29년이 흘러 중국은 정치 경제적 힘은 커졌으나 역설적으로 지도자들의 국익에 대한 두려움이 갈수록 커져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의 노골적인 요청
크리스 영은 지난달 홍콩 언론인들이 베이징 초대받았을 때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으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외부세력이 홍콩을 전초기지로 사용되지 않게 막아 달라. 중국 본토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를 더 많이 해서 홍콩 젊은이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전해 달라"는 노골적인 요청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이후 감옥에 갇힌 중국 언론인들 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홍콩에서 언론인이 감옥에 갇히는 일은 드물지만 중국의 입김이 갈수록 커지면서 자기검열이 늘어나는 등 언론에 대한 중국의 편집증적인 태도에 굉장한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