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를 다루지만 놀이처럼 볼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논다고 욕먹을때 이 책을 인용해봅시다!
연암서가
인간의 놀이 = 문화의 원천
예를 들어 피라미드는 왜 만들었을까? 그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굳이 그 시대에, 그런 건축물이 인류에 필요했을까? 그 시절 놀이는 명예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피라미드 건설도 일종의 놀이였을 것이다. 물론 계급이 아주 높은 왕이나 왕족의 놀이쯤 되겠다. 또, 청자는 왜 만들었을까? 음식을 담는 그릇이 그냥 흰색이면 될 것을 굳이 코발트색을 입혀 청자를 만들어 낸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어쩌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예쁘니까. 도자기를 만들다가 이것저것 섞어보니 예뻤을지도 모른다. 결국 놀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위징아는 인간의 문화는 놀이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했다. 경기(스포츠), 종교, 법률, 전쟁,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가 인간의 놀이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며, 이러한 행위에는 '자유로움', '일탈성(실제로부터 벗어난 것)', '시간과 공간의 제약', '절대적 질서의 존재'가 있다고 했다. 놀이라는 것이 곧 인간의 삶의 요소와 일면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지만,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전쟁이란 행위로 놀이는 진보가 아닌 퇴행을 경험하게 되었다.
현대사회는 어떨까. 과거 신분적 특권이었던 놀이가 이제는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놀이가 아니다. 현대인에게 주어지는 놀이는 고작 퇴근 후 자유시간이다. 이러한 행위는 노동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 작업하는 인간(Homo Faber)을 잠시 망각하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각박하고 여유롭지 않은, 재미와 자유가 없는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틀에 박힌 인생을 사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라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는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그간 '놀이', '휴식', '유희'라 생각했던 것이 진정한 것인지 잠시 생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