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일본 온천여행 설연휴를 틈타 엄마와 함께 일본의 온천에 갔었다. 근사한 료칸에서 대접을 받고 있으려니 엄마도 마음이 놓이셨나보다.
이창희
몇 년 전에 아빠가 먼저 떠나신 후, 우리 가족의 명절은 훨씬 단출해졌다. 아빠가 계실 때는 친척들도 어른을 중심으로 모여들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멀어지는 게 느껴진다. 이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받아들이려 하지만 아빠가 보셨으면 안타까워하시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쓸쓸하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멀어지는 거리 때문에 좋은 점도 있다. 예전 같으면 연휴 동안 집을 비우기 위한 구실이 필요했다면, 요즘엔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명절을 보낼 수 있다.
어느 설날엔 엄마와 함께 온천에 다녀왔고, 추석 연휴를 끼고 일주일 동안 라오스 여행을 하기도 했다. 이제 나에게 연휴는 더 이상 불편한 시간이 아니다. 나의 가족들은 내가 마흔다섯의 비혼임을 인정해줬다. 내가 원하는 것들로 명절 연휴 일정을 채워 넣어도 나의 그런 선택을 존중해준다. 내가 명절 때 맡아야 하는 일이 있는데 자리를 비우면, 가족 중 누군가 그것을 기꺼이 대신 맡아준다. 나도 그들의 일을 대신해야 할 때가 온다면, 기꺼이 맡아 줄 준비가 돼 있다.
지금의 내가 느끼는 '자유'는 그동안 우리 가족 모두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라 믿는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살아왔던 방식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부모님이 세상에 내보낸 네 명의 아이들은 덕분에 자신의 방식대로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어른이 됐다. 내가 가족의 골칫거리인 '노처녀'로 머물지 않을 수 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른들이 얘기하던 '평범한 삶'에 속하지 못했다. 이십 대에 결혼하지 못했고, 삼십 대에 아이를 낳지도, 학부모가 되지도 못했다. 마흔이 된 주변 친구들이 아이들의 대학 입시로 걱정할 때, 나는 그런 걱정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40대 비혼인 나의 삶은 실패작일 것이다. 누군가는 사회에서의 성공을 위해 독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난 회사에서도 매일 버티는 신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내가, 정확히는 나의 자유가 마음에 든다.
"설 연휴에 어디 간다며."
지난주에 집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가 묻는다. 난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이 59년 만에 왕좌를 차지하는 것을 보겠다며 UAE행 비행기를 예약해둔 차였다(결국, 대한민국이 8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여행은 하루 전에 급하게 취소했다). 엄마는 이제 철없는 큰딸이 어디를 가든 크게 걱정하지 않으신다. 가족의 믿음은 내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문이고 든든한 배경이다. 또한, 그들의 믿음이 있기에 나는 삶을 더 잘 살고 싶다.
인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중년을 넘어가면서 나이 듦과 병약해짐에 대한 걱정이 늘어가는 것을 제외하면, 나는 지금의 내가 맘에 든다. 늙은 엄마의 걱정거리이거나 우리 집 며느리의 '못된 시누이'가 되지만 않는다면, 이대로 나이 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의 결과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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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안 했지만, 더는 명절에 도망다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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