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태안화력 발전소 작업 현장
신문웅
업무지시체계가 붕괴한 현장에서 소통은 오직 위에서 아래로만 이루어졌다. 원청과 하청노동자의 소통은 업무의 연관성 이상의 위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현장 노동자의 이야기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는 갖추지 않았다.
이런 위계적인 방식의 소통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외주화 과정에서 연속적인 업무를 임의로 분할하면서 단순히 업무를 나누는 것 이상으로 업무의 핵심과 비핵심이라는 자의적인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위계로 분할된 업무는 연속된 발전소 업무에 대한 이해를 전체적으로 떨어뜨렸다고 현장 노동자는 이야기한다. 즉, 실질적으로 원청에서 하청 노동자에게 업무를 지시하지만 원청은 외주화된 석탄이송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잘못된 방법은 (석탄의) 자연발화를 더 심해지게 해요. '그렇게 하면 자연발화가 더 심해진다 안하는게 좋겠다' 하면 무조건 자기 말이 맞다고 우겨서 하게 되고. 시키면 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거죠."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문제는 원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발전소 하청업체의 관리직이 대부분 원청 출신 퇴직자로 채워지면서 같은 하청업체 안에서도 관리자와 현장 노동자 사이에 업무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만큼 소통도 쉽지 않았다.
원청과 하청 모두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반영할 수 있는 귀가 없는 상황에서 원청에서는 현장 노동자의 설비 개선요청을 반영하지 않은 채 설비개선을 실행하며 문제를 키우기도 했으며, 하청 관리직은 작업중지가 고려되는 상황에서 현장 투입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적절한 소통수단
발전소 업무가 외주화를 거치면서 원청과 하청노동자 간의 소통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개인 전화기'였다. 현장 노동자의 개인 전화기는 제어실과의 소통을 위한 무전기이자, 고장난 랜턴의 대체품이기도 했으며, 원청의 업무지시를 받는 작업 상황을 전/후로 보고하는 창구의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실제 업무에서 필요한 실시간 소통을 위한 통신 수단은 지급하지 않고 원청의 업무지시 이행 여부를 보고하기 위해 위험한 현장에서 장갑을 빼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하나 같이 아찔한 상황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의 판단은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카카오톡'이라는 간소화된 업무지시는 도급 계약에 따라 원청이 하청업체에 공문을 보내고 협조를 구하는 최소한의 방식조차 생략시켰다. 간소해진 절차만큼이나 업무지시는 쏟아졌으며, 현장 노동자가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은 고려되지 않았다.
"전화로 계속 문자가 날라와요 계속. 카톡방이 수십개가 있어요. 계속 전화가 오는 거죠. 사람 못살게 구는 거예요. 똑같은 거 가지고 사람만 바꿔가면서 차장, 부장, 너네는 왜 일 안하냐. 못살게 구는 거죠. 그럼 일을 안할 수가 없어요."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때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노동자의 권리 현실과 맞닿아 있다. 노동자의 발언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노동자의 안전도 담보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태안화력발전소의 외주화 과정은 인력 축소와 부실한 설비의 문제만이 아니라 업무 과정에서 소통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소통의 실패가 위험한 상황을 마주하는 노동자의 대처능력을 떨어뜨려 온 것이다.
그럼에도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현장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내가 하는 노동을 아는 만큼 내가 마주한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하는 노동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어야 마주치는 위험도 대처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함께 모여서 말할 수 있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현장에서 노동자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귀를 갖출 때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의 문제 해결이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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