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보물 찾기
이명주
귀향한 지 7년. '정말 이대로면 고독사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근래 몇 번 했었다. 귀향을 하고 이제껏 내가 걸어온 길을 '괜히 왔다' 후회한 적은 정말 단 한 번도 없다. 구체적으로 고향인 부산으로의 이주, 작은 게스트하우스 운영, 글과 그림, 여행 등을 통한 소통의 작업들. 하지만 거의 언제나 그리고 점점 더 혼자인 것이 버거운 지는 꽤 됐다.
그런 중에 이 책 마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발견했다. 억센 잡초 같은 느낌의 서체로 쓰인 제목과 표지에 펼쳐진 하늘과 밭 사진에 끌려 속을 열어보니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술을 마시는 건 인생을 도려내는 일", "외로움 피하려다 골병든다" 같은 소제목들이 막힌 혈을 찌르는 침처럼, 나약해진 정신을 꾸짖는 회초리처럼 와 닿았다.
책 속에서 작가의 매(회초리)는 수십 년 굴욕적인 도시 생활 속에서 악전고투하다 간신히 정년을 맞은 후 시골을 만만히 보고 구체적 목적도 없이 낭만적 귀향을 꿈꾸는 노년층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50년째 시골에 살고 있는 작가의 경험으로 너무 살벌하고(침실을 요새화하고 수제 창을 만들어 불가피하다면 살인도 망설이지 말라는 등) 진지한 조언들로 가득하다.
나의 경우 30대 초반에 시골이 아닌 도시인 고향으로 왔고 아직은 젊은 층에 속하니 다소 거리는 있지만 크게 보아 지금의 자리에 있기 전 서울에서 삶의 기억, 그리고 귀향과 함께 여러 일들을 결심하고 밀어붙일 때의 첫 마음들, 그 각각의 과정, 무엇보다 현재의 내 생활과 정신 상태를 냉정히 평가하고 각성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홀로서기 정신의 부족 (…) 부모에게 의존하고, 학력에 의존하고, 직장에 의존하고, 사회에 의존하고, 국가에 의존하고, 가정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고, 경제적 번영의 시대에 의존하면서 (…) 사실 당신은 자신에게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또 도피해온 것은 아닐까요."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술입니다. (…) 알코올 바다 저 멀리에 있을 계획이요, 목적이요, 삶의 보람이요, 창조요, 이념인 대륙을 본 정신으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 결국 어제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지루하게 보냅니다."
"술 이외에도 당신 심신을 갉아먹는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고독입니다. (…) 바깥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것 같은, 몸 둘 곳 없는 이 처지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의문이 순식간에 커져 저녁 무렵에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 무료함과 고독에 시달리다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절망적인 결론에 이릅니다."
이 대목들을 읽으며 눈물이 핑 돌 만큼 공감이 되는 동시에 부끄러웠다. 그리고 마침내(이제야) '홀로 살아왔다고 해서 진정한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가슴을 쳤다. 어느 때부터 초심과 뚜렷한 목적 대신 가벼운 잔에 물과 같은 성질의 고독만을 채워 스스로 흔들리며 조심 없이 여기저기 쏟고 다니는가 하면 그 빈 잔에 술을 채워 마셔댄 나를 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