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호텔라마호텔 마을 모습
신한범
캉진콤파에서 하산하는 날. 라마 호텔(숙소 이름이 아닌 지명, 2480m)까지 오게 되었다. 숙소는 '프랜들리 호텔(Friendly Hotel)'. 이른 아침 향과 촛불을 밝히며 기도하는 샤우니(여주인) 모습에도 한이 서려 있었다.
사연을 묻자 친정이 랑탕 빌리지. 친정 식구 모두와 자신의 둘째 아들도 죽었다고 한다. 더듬더듬 영어로 말하는 그의 눈가에는 어느덧 눈물 자국이. 가이드 겔덴의 말에 의하면 과거에 건장했던 그는 지진 이후 삶의 의욕을 상실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떠날 때에 마당 가장자리까지 나와 손을 흔드는 여주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트레킹중에 들려온 부고
랑탕 트레킹 팀은 트레커 9명과 스태프 15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첫날부터 눈에 띄는 앳된 젊은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치리 셀파(Chiri sherpa)'. 셀파족으로 쿰부 히말라야 아래 마을인 설레리 출신으로 고산 등반 대신 안전한 트레킹 가이드가 되는 것이 꿈인 25살의 젊은 친구. 18살에 결혼하여 부인과 4살 된 딸과 카트만두 외곽에 살고 있다며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수줍게 웃곤 하였다. 그의 직책은 보조 가이드. 어눌하지만 우리말이 통했고 항상 활기찬 모습으로 트레커의 각종 문제를 해결해 주는 슈퍼맨과 같은 친구였다. 매일 아침 6시에는 생강차를 숙소로 가져왔으며 포터와 주방을 모두 아우르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랑탕 빌리지에서 캉진곰파로 오르는 날은 폭설로 발을 떼기도 힘든 상황. 그 친구가 선두에 나서 러셀(겨울철 눈이 많이 쌓인 산을 등반할 때, 선두가 눈을 밟고 헤치며 길을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하며 길을 만들었고 우린 그의 노력 덕분에 힘은 들었지만 편안하게 캉진 곰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식 식사 후에 캉진리에 오르기로 하였지만 폭설 때문에 문 밖에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 4층 식당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치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기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당시 캉진곰파는 유선 전화를 제외하고 와이파이도 휴대폰도 데이터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