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빨래방망이' 투사를 아십니까

그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죽음들... 3.1 혁명인가, 3.1 운동인가

등록 2019.02.20 19:20수정 2019.02.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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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혁명인가, 3.1 운동인가.

참 오랫동안 교과서 실렸던 명칭을 따르자면, '3.1 운동' 당시 사상자는 2만3480명이다. 1919년 3월 1일, 그 후 3개월 동안 죽은 사람이 일제의 공식 통계로만 7509명에 달한다. 부상자 또한 1만5971명에 이른다고 하니, 하루 평균 260명이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대부분 누구였는지도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콘도 쇼우이치의 '만세 소요 사건(1964)'을 출처로 하는 당시 수감자 통계를 보면 무직자 3.1%, 노동자 3.9%, 상공업자 13.8%, 지식인·청년·학생 등이 20.8%, 그리고 농민이 58.4%였다. "3.1 운동에는 농민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1919년 4월 4일, 남양 방씨 다섯 명의 순국
 
 체포 압송되는 3·1운동 주도학생들
체포 압송되는 3·1운동 주도학생들독립기념관
 
남원 지역에도 농민이 많았다. 예전부터 옥야백리(沃野百里)로 불리는 그 곳, 비옥한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는 그 곳에서도 그 때 "대한독립만세"가 꿈틀거리고 진동했다고 한다. 전국적인 투쟁의 열기가 남원에서도 터져 나왔던 날짜는 1919년 4월 4일, 그 장소는 광한루 광장과 북부 시장터였다고 전한다.

"남원 읍내의 만세운동은 4월 4일 정오를 기해 광한루에서 1천여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시작되었고, 이어 장터에 모였던 수 천 명의 군중이 합세하면서 불같이 확대되어 갔다. 이 때 기독교 측에서는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천도교 측은 등사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 시위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갔다."

국가보훈처가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방명숙을 소개하며 전하는 그 날 분위기다. 방명숙(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은 시위 행렬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무차별 총격에 의해 순국했다고 한다. 방양규(1968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란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시위 군중을 이끌고 헌병 분견소로 행진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다 무차별 사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했다.

방진형(1968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또한 그러했다. 방제환 역시 남원역 광장 건립 기념비에 현장에서 순국한 이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남양 방씨. 문중에서 이 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숨을 거둔 이는 또 있었다. 역시 1968년 대통령 표창과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방극용. 그에 대한 기록은 1985년 나온 <남원 항일운동사>가 좀 더 자세하다.


남편 죽음 접한 그의 아내가 빨래 방망이를 들고...
 
 3.1 혁명에 참여한 어린 소년을 붙잡는 일본 헌병경찰
3.1 혁명에 참여한 어린 소년을 붙잡는 일본 헌병경찰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895년 남원군 주생면에서 출생했다고 하니, 당시 나이 스물 넷. "평소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개탄하며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던" 청년이라고 했다. 장날을 맞아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진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움직였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들에게"는 참여를 권했고, "독립만세운동 지도자 몇 몇 인사들과는" 의논했다고 한다.

4월 4일 오후 2시, 그는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가슴을 일제의 총탄이 관통했다. 남원 3.1 투쟁에서 첫 번째 희생자라고 한다. 이어 방명숙, 방양규, 방제환, 방진형 등도 사망했다. 같은 날 집안 사람 다섯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들과 함께 숨을 거둔 가족은 또 있었다. <남원 항일운동사>는 이렇게 전한다.


"남편의 죽음을 들은 그의 아내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빨래 방망이를 들고 쫓아와 일제 헌병과 대적하다가 역시 총에 맞아 죽었는데, 아들과 며느리의 죽음을 들은 그의 어머니가 쫓아와 '왜 내 아들과 며느리를 죽였느냐? 내 아들과 며느리를 살려내라'고 헌병들에게 대들다가 역시 총에 맞아 죽으니, 훗날 사람들은 그들 셋을 가리켜 '남원의 삼순절'이라고 불렀다."

서울 탑골공원 만세운동 조형물에도 남아 있다는 그 처참한 '광경'에 안타까움을 더 하는 지점이 있다. 이 여성들의 이름을 후손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여성의 이름을 족보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시대, 일가가 한꺼번에 끔찍하게 목숨을 잃은 상황이 남긴 후유증임에 분명하다.

3.1 운동인가, 3.1 혁명인가

2019년 3월 1일, 많은 사람들이 피를 뿌렸던 그 곳, 남원 광한루원에서 '3.1절 만인만북 문화제'라는 행사가 열린다. 시민들이 모여 100주년을 맞아 자발적으로 준비한 문화제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던 그 길을 따라 행진도 한다고 한다. 행사 소개에서 이 문장이 특히 눈에 띄었다.

"3.1 만세 운동은 남원 민중들의 자발적인 봉기였고, 우리 민족 최초의 민주 정부인 상해 임시 정부를 세운 위대한 혁명이었습니다."

그 위대한 혁명의 대열에 여성들 또한 분명 있었다. 아들의 죽음에, 남편의 죽음에, 아버지의 죽음에 분노한 여성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자신의 이름도 남기지 못한 이들의 죽음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이와 같은 죽음들을 담기에 '7509'은 턱없이 작은 숫자임에 분명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린 사실을 후손들이 기억하기에 그 명칭 또한 모자람이 분명 많다.

3.1 운동인가, 3.1 혁명인가.
#3.1혁명 #3.1운동 #남양방씨 #방극용 #삼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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