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조선인 노무자들이 탄광 벽에 쓴 피맺힌 절규들.
눈빛출판사
'긴 아리랑'
하늘도 무심하시지
기어이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죽는구나.
동포(의 시신)를 깔고 동포(의 시신)에 덮여서 죄다 한 구덩이에 묻히는구나!
이름 하나 생시 한 줄 표식도 없이 누가 와서 찾아가지도 못하게 …
여보시오 동포여! 내 조국 사람들이여!
행여 내 목소리 들린다면 부디 나를 위해 울어주오
내 신세 되어 귀향 못한 수만 동포를 잊지 마오
부디 데려가 주오
내 고향, 내 조국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의 삶과 죽음을 동영상으로 만든 <긴 아리랑>에서 내레이터가 구성지게 읊조리는 사설의 한 대목이다. 그와 함께 화면에서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무자 시신들이 퇴비장의 풀처럼 한 구덩이에 버려지고 있었다. 그 장면에 순간 장내는 조용한 흐느낌으로 변했다. 손수건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가게 된 조선인 노무자들은 '모집'이나 '관의 알선'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두 강제연행이었다. 그렇게 연행된 조선인들은 일본 각지 및 점령지의 탄광, 발전소, 군항, 군수공장 등에서 감금상태로 강제노역을 당했다. 영화 <군함도>에서 재연했듯이 비인간적 강제노역으로 질병, 사고, 집단 괴롭힘 등으로 많은 조선인 노무자들은 목숨을 잃었다. 1945년 해방 때까지 이와 같은 처지에 놓였던 조선인 강제노역자는 수백만 명에 이르며, 그 사망자는 14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죽어간 이들 가운데 우선 74위가 남북 민화협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주선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3.1절 100주년 기념일인 지난 1일 오후 2시 백범기념관에서 제1차 조선인 유골봉환 추모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그동안 이들의 유골을 안치해줬던 일본 오사카 통국사에서 온 스님과 유해 봉환단 25명 그리고 국내 귀빈 300여 명이 참석했다. 배우 박성웅씨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식에서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김용덕 이사장님의 사업소개 및 경과보고가 있었다.
특별히 일본에서 유골봉환사업에 이바지해 온 일본인 곤노유리씨의 추모사가 있었다. 문희상 국회의장, 김부겸 행안부장관, 북측 민화협 김영대 회장의 추모사(대독)에 이어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홍걸 남측 만화협상임의장의 마무리 추모사가 있었다. 김홍걸 의장의 추모사 일부를 옮긴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인도주의적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