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안 사회>의 표지
휴머니스트
저자는 한국 사회에 두 개의 서양이 공존한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식민지 시대 일본이 번안한 서양이요, 또 하나는 해방 이후 한국이 번안한 서양이다.
이중 저자는 전자에 주목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들어온 근대 서양은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기존의 전통도, 서구의 근대도 모두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는 양옥, 양장, 양복, 양파 등 새롭게 들어온 문물에 '양'자를 붙여, 그것을 우리의 것과 구분하려 했지만, 그것은 무의미했다. 서양의 문물은 그보다 더욱 폭넓고 강력해서 우리의 의식주를 포함하여 사회시스템까지 바꿔놓았다.
문제는 그러한 서양의 문물이 식민지 본국 일본을 거치면서 이미 왜곡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근대화하면서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서양을 번안했고, 자신들의 필요에 맞추어 식민지를 근대화, 서구화시켰다. 그것은 서양이 아니라 일본이 번안한 서양이었고, 따라서 식민지 조선은 비틀어진 모습으로 근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언어는 일그러진 근대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리 선조들은 조선어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정책에 맞서 한글의 형식은 지켜냈지만, 내용이 오염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서구의 새로운 개념을 주체적으로 번역하지 못하고 일본이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번역한 언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말은 일상과 괴리되었고, 우리에게 맞지 않는 개념과 이론에 맞춰 우리 스스로를 재단하는 양상이 벌어졌다. 흔히 일본의 글을 보면서 한자만 읽으면 대충 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만큼 우리의 개념어가 일본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서구 학술 개념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중역은 약인 동시에 독이었다. '번역의 고통'을 건너뛴 대가로 구어와 문어의 틈이 더 벌어지고 한자어는 더욱 늘어났다. 서양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일본을 매개로 만난 대가였다. '언문일치'는 형식에 불과했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과 개념어는 더욱 멀어졌다. 한자와 영어를 포함한 서구어, 일어, 한글의 상호작용 속에서 진행된 근대어 번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거치면서 공고하게 뿌리내렸다. 일제의 정치적 지배는 말의 지배를 통해 완성되었다. - 33p
우리는 근대를 비판하는 글 자체를 근대어로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근대어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과정 속에 놓였는가'를 밝혀야 한다. 근대 한국어의 기원은 근대 일본이 생산한 서구 원천 번역어와 닿아 있다. '자주독립 제국'이란 말조차 일본이 번역한 근대어다. - 35p
저자는 현재 우리의 교육 시스템 역시 일제 번안의 산물임을 지적한다. 우리는 지금의 충효 사상이 유교에서 시작되어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본디 '충(忠)'은 상사나 상위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을 닦는 것으로 조선시대 교육에서는 충을 통해 개인의 도덕과 자주성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충의 의미를 바꾸었다. 일제가 나라와 상관과 조직에 충성하라는 규율화 된 덕목으로 충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효(孝)'도 강조했는데 일제식 층위 꼭짓점에는 천황이 앉아 있었다. 즉 충효가 일제 군국주의의 필요에 의해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일제는 이 교육시스템을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가져왔고, 그것은 우리의 근대교육의 시작이 되었다.
일제는 유교와 근대국가제의 기형적 결합, 천황제라는 유사종교와 근대국가의 종교 혼합, 국민도덕과 가족주의의 기묘한 혼합을 식민지에 이식했다. 게다가 군국주의적 규율과 폭력을 교육의 수단으로 동원했다. – 59p
일제는 서구의 근대교육을 이식해 천황제 국민국가 형성을 위한 교육체제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이원화된 교육체제는 군국주의식 훈련과 만나면서 학교의 병영화를 촉진시켰고 상명하달의 불평등한 교육 구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충효와 가부장적 권위의 강제라는 봉건 윤리에 군국주의적 규율이 더해져 식민지 근대 교육의 뼈대가 마련되었다. – 61p
여전히 이어지는 식민주의
저자는 이렇게 일제에 의해 번안되어 이식되어진 근대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일본이 번역한 근대의 개념어는 여전히 우리의 주요 단어이며, 건축이나 언론 등과 같은 일부 분야에서는 그것을 대체할 우리의 언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특히 일그러진 근대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은 박정희 군사독재의 등장과 관계가 깊다. 일본식으로 사고했던 이들이 집권함에 따라 식민지 시대의 반봉건성이 다시 번안되어 근대화로 되살아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