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옆에서 나를 기다렸던 카사
박도
그 녀석 이야기를 쓴 산문집 <카사, 그리고 나>를 펴낸 바 있다. 앞으로 여건이 허락되면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그놈을 주인공으로 달콤새콤한 장편소설을 쓰고 싶다.
다음은 내 산문집 <그 마을에 살고 싶다>의 배경 마을이었던 '송한리'로 갔다. 그 마을에 이르자 옛 시인의 시구대로 '산천은 의구'했다. 하지만 감자꽃이 핀 그 마을 산등성이 일대는 그새 밭으로 개간되었고, 한우를 키우는 큰 축사로 변해 있었다. 청정마을이 사라진 것 같아 씁쓸했다.
온 나라가 '개발' '개발'로 산골 오지 청정 지역조차도 점차 남김없이 오염되고 있다. 사람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의 무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서도 우리의 숨통을 조이는 공해나 미세먼지를 남의 탓만 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공해요, 공해를 일으키는 주범이면서도 자기는 오염원이 아니라고 오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모두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 없이는 지구 환경 개선은 공염불일 것이다.
잠시 둘러본 송한리 마을이었지만 내 마음 속의 아련히 남아있는 무릉도원이 허물어지는 아픔을 안고 그 마을을 떠나왔다. 사실 나는 때때로 그 마을 한 오두막 집에서 카사란 놈과 오순도순 살면서 영원히 잠드는 꿈을 꾸곤 했다.
귀로에 옆자리 기사에게 강림면 월현리 의병대장 민긍호전적비로 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뒷자리 학생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가는 길에 주천강 옆 어탕칼국수 집에서 마음에 점을 찍은 뒤, 곧장 의병장 전적비로 갔다. 거기서 하차하여 일동 묵념 후 기념촬영을 했다.
민긍호 의병장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꺼져가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제에 항거하다가 순국하신 진정한 애국자였다. 그분의 후손은 여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분의 전적비를 바라보니까 착잡하다.
진짜 애국자들은 한일병탄 전, 일제강점기 때 거의 다 순국하시고, 외세에 빌붙어 진짜를 탄압하거나 구차하게 살아남은 민족반역자들이 진짜 애국자 노릇하는 오욕의 역사가 역겹기만 하다.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에서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짐승같은 무리들은 이즈음도 친일파 후손 석방을 외치면서 태극기에 성조기까지 들고 날뛰고 있다. 일장기와 성조기를 들고 외칠 것이지 왜 애꿎은 태극기까지 들고 설치는지? 전직 교육자로서 그런 무리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부끄러움이 크다.
전적비 앞 주천강 강가 버들강아지 곁으로 가서 자세히 바라보니 가지마다 물이 잔뜩 올라 곧 봄이 온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