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로스쿨 김창록 교수는 지난달 18일 전국 로스쿨 학생협의회의 총궐기대회에 대하여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거리에서 궐기대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로스쿨 교수의 입장에서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고 말했다.
김창록
- 지난달 18일 로스쿨생들의 총궐기대회 당시 경북대 로스쿨생들에게 편지를 쓴 이유는?(관련기사- http://omn.kr/1hd2s)
"우선 부끄러웠다. 로스쿨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면서 미래의 진로를 그릴 수 있게 할 일차적인 책임은 로스쿨 교수에게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거리에서 궐기대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로스쿨 교수의 입장에서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고마웠다. 잘못된 로스쿨 시스템을 바로 잡는 일에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나서주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권리를 누릴 수 없다. 올바른 로스쿨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은 로스쿨 학생들의 권리다. 현재의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기준인 '총입학정원 대비 75% 이상'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불합리한 것이지만, 2010년에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가 그 기준을 정할 당시 법무부가 원래 관철하려고 했던 것은 '총입학정원 대비 50% 이상'이었다.
사법시험 합격자수였던 1000명 이상은 합격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명백하게 불합리하다고 로스쿨 학생 3145명이 과천 정부종합청사 대운동장에 모여 외쳤다. 그리고 그 다음 날 '75%'로 결정되었다. 그 때 로스쿨 학생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로스쿨의 고시학원화'는 더 일찍 더 심각한 형태로 닥쳤을 것이다. 로스쿨 학생들도 교수들과 함께 로스쿨 시스템의 '정상화'에 나서주어야 한다. 우리들의 로스쿨이기 때문이다. 적극 나서준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한 가지 덧붙이면, 2010년에 나섰던 로스쿨 학생들처럼 지금 나서고 있는 로스쿨 학생들도 분명 사시 출신의 법률가와는 다른 법률가가 될 것이다. 그들은 역사의 현장에 섰고,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뼈저리게 확인할 기회를 가졌다. '나는 왜 법률가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는 과정을 거쳤다. 법률가는 사회의 불합리한 지점들을 고쳐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 불합리한지를 확인하는 능력', '불합리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서는 자질'이 필요하다. 그 능력과 자질을 기르고서 법률가가 된 사람과 시험공부만으로 법률가가 된 사람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점 또한 전하고 싶어서 부끄러운 편지를 썼다."
- 지금의 로스쿨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시험'이 로스쿨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로스쿨 시스템의 청사진인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건의문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일회의 시험결과에 의존하는' 사법시험 제도로는 '변화된 시대상황이 요구하는 바람직한 법조인'을 확보할 수 없다는 인식이 로스쿨의 출발점이다. '우수한' 법률가는 교육을 통해 길러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변호사시험은 '법률가로서의 기본소양 및 자질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한 경우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는' '자격시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전제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시험과 같은 시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충실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도입된 변호사시험은 자격시험이 아니라 사법시험과 마찬가지로 '정원제 선발시험'이다. '선착순'이다. 로스쿨 학생들은 전국에서 1년에 2000명만 입학할 수 있는 로스쿨에 들어와 3년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했는데도,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기본소양과 자질"을 갖추었더라도 일정한 등수 안에 들지 못하면 변호사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시험에 올인하는 무한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시험과목 이외의 과목을 수강할 여유가 없고, 시험과목의 경우에도 시험에 나오는 내용 이외의 내용에는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 학원 교재를 들고 학원의 동영상 강의를 보는 데 몰두해야 한다. 법률가의 사고를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암기만 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없으니 그렇게 하는 학생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시험이 지배하는 구조 속에서 로스쿨은 학원이 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것은 로스쿨 시스템의 이념인 '교육을 통한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 로스쿨 설립 시 상당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로스쿨을 지키고자 노력하는데, 그 이유는?
"사법시험 제도는 실패한 제도다. 최근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사법농단'이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 '법관의 공정성'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비추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전직 대법원장 등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들은 사법시험 제도의 최정점에 섰던 엘리트 법관들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법률가가 되는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를 체화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결과다.
21세기의 법률가는 '새로운 법률가'여야 하며, '새로운 법률가'는 교육을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 사법개혁위원회의 건의문이 짚고 있는 것처럼, 21세기의 '우수한' 법률가는 '국민의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 및 자유ㆍ민주ㆍ평등ㆍ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보다 전문적ㆍ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개방되어 가는 법률시장에 대처하며 국제적 사법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세계적인 경쟁력과 다양성을 지녀야' 한다.
그 수많은 능력들은 극히 범위가 제한된 암기식 시험공부로는 결코 길러질 수 없다. 인간과 사회와 역사 속에서 법을 생각해보고, 법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해 깊이깊이 고민해보는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길러질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로스쿨 시스템은 실패한 사법시험 제도를 단순히 대체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새로운 법률가를 길러내기 위해 도입한 새로운 시스템이다."
- 2010년 참여연대가 법무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 김창록 교수 등 많은 이들이 지금의 '신규 변호사 배출 통제로 인한 로스쿨의 고시학원화'를 예견한 것으로 보이는데 왜 미리 막지 못했나?
"'왜 막을 수 없었나'라는 질문은 매우 아픈 질문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막지 못했다. 논리에서가 아니라 힘에서 밀렸다. 사법시험 제도의 관성은 그만큼 강고했다.
로스쿨 시스템의 도입을 적극 주장했던 사람들은 처음부터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호사시험법'에 '총점 100점 만점에 60점'이라고 합격점을 명기하고, 시험의 내용도 '기본소양과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자격시험과 마찬가지로 로스쿨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사람이라면 첫 시험에 대부분 합격하고 두 번 정도 시험을 치르면 거의 전원이 합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무부서인 법무부와 사시 출신 법률가들이 장악하고 있던 국회 소관위원회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호사시험법'에 합격점을 정하지도 않았고, 변호사시험을 사법시험보다 더 어려운 시험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는 합격자를 시험관리위원회가 '합리적인 기준 없이' 정하고 있다. '1000명'으로 하고 싶었지만 학생들의 힘에 밀려 '1500명'으로 하루 만에 바꾸기도 했다. 매번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 때 배포되는 보도자료에 선발기준이 제시되는 데 도무지 합리성이 없다.
'숫자를 통제해야 한다', '시험은 어려워야 한다'라는 구시대적 사고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새로운 시대를 지향하는 로스쿨 시스템을 뒤틀고 있다. 합리성을 생명으로 삼는 법률가의 자격을 점검하는 시험제도가 이토록 비합리적이니 참담할 따름이다. 하루 속히 바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