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총 길이 428km의 경부고속도로. 당시 돈으로 1km당 거의 1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경부고속도로는 한국의 토목기술, 자동차 산업, 지역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역사박물관
도서관을 지을 돈이 부족했던 걸까. 대한민국이 고속도로를 착공하던 1967년 시점의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142달러였다. 428km에 달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429억7300만 원이 들었다. 비슷한 시기인 1968년 8월 20일 연건평 1천 평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개관한 종로도서관은 6629만7천 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종로도서관 규모 공공도서관을 648개 지을 돈으로 우린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이다.
당시 고속도로 건설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국내외에서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우린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경부고속도로를 짓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을 지을 돈이 없었다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1980년 말에는 일인당 소득 수준이 1592달러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시점보다 11배 이상 늘었다. 이때도 강남에는 도서관이 단 하나도 없었다.
강남 일대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개발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무질서한 땅을 새롭게 정리해서 도로, 상하수도, 학교, 공원 같은 공공시설과 택지를 만드는 사업이다. 20세기 초 독일에서 처음 시행한 이 제도는, 대규모 주거지와 도시 개발 자금 확보가 어려웠던 독일, 일본, 한국 같은 후발 산업국가에서 도시 개발 방법으로 활용해 왔다. 837만 평에 달하는 영동지구 구획정리사업을 통해서도 도서관 부지는 마련되지 않았다. 반포∙청담∙이수∙압구정∙도곡지구 같은 영동 '아파트 지구' 지정과 도로, 주차장, 녹지공간이라는 '3대 공간' 확충 과정에서도 도서관은 고려되지 않았다.
땅과 돈이 부족했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우리는 도서관을 지을 땅과 돈이 부족했던 게 아니다. 도서관을 지을 '생각'과 '의지'가 없었던 거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절 우리에게 '도서관'은 무엇이었을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곳?
양택식 시장이 '남서울 계획'을 발표하던 1970년 말 서울의 자동차 총 대수는 6만 대, 이 중 승용차는 3만4천 대였다. 너비 70미터 길이 3.6km의 영동대로, 너비 50미터 길이 6.9km의 강남대로, 너비 50미터 길이 3km의 도산대로가 이때 계획됐다. 자동차가 많지 않은 그 시절 강남에 10차선 도로를 깔 생각은 해도 도서관을 지을 생각은 아예 없었던 거다. 이런 맥락에서 말죽거리의 잔혹한 이야기는 집 없는 서민뿐 아니라 이 땅의 도서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서관 부지에 대한 인색함이 어디 강남뿐이랴. 드넓은 강남을 개발할 때도 고려되지 않은 도서관이 서울 강북이나 서울보다 인프라가 열악한 타 지역에서 고려되었을까. 먹고살기 바쁜 대한민국에서 도서관은 '사치'였을까.
말죽거리의 잔혹한 이야기는 끝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