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철씨 일가 '귀순'을 알리는 언론보도(동아일보, 1987. 2. 9)'따뜻한 남쪽나라'로 가고 싶다던 김만철씨 일가 11명은 당국의 설득이 주효해 1987년 2월 8일 김포공항으로 입국하여 기자회견을 한 후 <대방동 수용소>로 이동하였다. 이들의 '귀순' 소식은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국민적 항의와 관련된 기사를 덮어버렸다. 신문 왼편 구석에 몰린 "추도회관련 40명선 구속방침"이라는 기사가 보인다.
동아일보
87년 1월 15일자 중앙일보 사회면에는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2단짜리 작은 기사가 실렸다. 이날 오후 이 기사 내용의 사실을 확인하는 기자들에게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그동안 숨겨오던 박종철(21세, 서울대 언어학과 3년) 군의 사망사실을 처음으로 시인하면서 그 경위로 앞의 인용 내용을 밝혔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치안본부 박처원 대공담당 5차장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유명'한 망언 한 마디를 덧붙였다.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수사관 6명에 의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연행되어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 박종운(26살, 사회학과 4년 재적)의 소재파악을 위한 조사를 받던 중 수사요원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의 고문으로 이날 11시 20분경에 숨졌다. 이들은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박종철을 숨지게 하고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은폐조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