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역 앞에서의 점심식사
지금여기에
평일 낮이었지만 역사 안팎과 식당가는 나들이 온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에서 입고 내려온 두꺼운 외투를 벗은 김순자씨는 이렇게 밝은 해 아래 서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누구 눈치 안 보고 이렇게 다니고 싶은 곳 돌아다니는 게 자유 아니겠어요?"라는 그녀의 말이 새삼 밝게 느껴졌다.
조금 늦은 점심을 먹으며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떨어진다'는 걱정부터 '아프다고 집에만 있으면 더 처지니까 이렇게 만나고 돌아다니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긴 시간 이동하느라 피로가 쌓였음에도 노년의 참가자들은 걸어 다니는 것 하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선생님, 다리가 안 좋다고 이야기 들었는데 괜찮으셔요?"
"내가 며칠 전부터 걱정했는데 웬 걸, 오늘 일어나니 다리가 가뿐한 거야. 이렇게 지팡이 없이도 걷는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셔 내가 계속 쫓아다닐 테니."
식사를 마친 일행은 보성녹차 밭으로 이동했다. 정씨 고택에 가기 전 녹차 밭 구경을 하고 싶어서였다. 1시간 정도의 이동 길에서 일행은 정숙항씨의 가족사와 정씨 고택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슬퍼하고 또 기막혀했다. 특히 삼척간첩단 조작사건으로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고초를 겪었던 김순자씨는 삼척간첩단 사건과 보성간첩단 사건이 너무나도 비슷하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지난해 떠난 동생 김태룡 생각에 더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김태룡씨 역시 이전부터 피해자들과 함께 보성에 오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고초를 이겨낸 힘에서 비롯된 유머 감각
보성의 한 녹차 밭에 내린 일행은 입구를 지나 삼나무 숲길로 들어섰다.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삼나무를 보고 연신 감탄하며 나무를 만져보는 일행에게 박우용씨는 갑자기 이리로들 와보시라 외쳤다.
"이 나무 봐요. 이거 껍질이랑 안의 속을 손으로 비비면 배에 구멍 난 데 때우기 제격이야."
박용우씨는 오랜 세월 배를 탔던 어부답게, 그 당시 배에 있을 때 이 나무로 빈 곳을 때운 기억을 실감 나게 이야기했다. 그에게 있어 배는 어떻게 보면 애증의 대상이기도 했다. 명태 조업을 하다 북한 경비정에 끌려갔고, 돌아와서는 열심히 모은 돈으로 배를 건조했지만 졸지에 간첩으로 몰려 7년간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풀려나 집에 돌아와 보니 배도 집안 살림도 모두 파탄지경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매번 피해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웃음꽃을 피우게 하는 그의 유머 감각은 지난 고초를 이겨낸 그 자신의 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삼나무 길을 지나니 드넓은 녹차 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들은 "텔레비전서 보던 게 이거구나" 하며 가지고 온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녹차 향을 맡아보려 고개를 숙였다.
"이런 데선 공기만 잘 쐬고 가도 보약이야"라는 최양준의 말에 돌연 걷다가 심호흡하기를 수차례, 녹차 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보이자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냥 찍기보다 한 손을 들고 찍자는 말이 나와 그 이유를 물으니 "우리 여기 있어요!"라는 의미라고 했다. "나 여기 잘 살아 있소"하는 외침처럼 말이다.
"이런 사실도 잘 알려지지 않으니 모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