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장애인들은 왜 '미투'를 외치지 않느냐 묻는다면..."

[인터뷰] 대전여성장애인연대 성폭력상담소 이인원 소장

등록 2019.04.20 17:17수정 2019.04.2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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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대전여성장애인연대 성폭력상담소 이인원 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 18일 대전여성장애인연대 성폭력상담소 이인원 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이은하
  
"성폭력 가해자가 예전보다 오히려 처벌을 안 받고 있어요."

대전여성장애인연대 성폭력 상담소(이하 대전여장연 상담소) 이인원 소장은 지난 18일 기자와 만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의 심각성을 이렇게 주장했다.

어떻게 된 것일까? 2011년 개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일명 도가니법)에 따라, 장애인 성폭력 처벌 기준이 강화됐다. 장애인을 성폭행 하면 징역 7년에서 무기징역까지 형량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처벌이 강화된 만큼 성폭력을 입증해야 할 조건이 까다로워졌다는 게 이 소장의 지적이다.
 
"예전에는 증거가 없어도 피해자 증언만으로 유죄 판결이 가능했어요. 대부분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길어야 1년 실형을 받았거든요."


이 소장의 말에 따르면 2011년부터 이런 관행이 사라졌다. 피해자 증언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입증할 만한 층분한 증거를 갖춰야만 한다.

문제는 일반 성폭력도 그렇지만 장애인 성폭력은 입증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것. 피해 당사자 중 지적 장애인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걸 모르는 경우도 많다.

여성 장애인의 현실이 이런데도 검찰은 못 본 척 눈을 감는다고 이 소장은 안타까워했다.

"피해자 조사를 하는데 담당 검사가 '나이 많은 아저씨 따라 갔다고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왜 따라갔는지 이야기 해 봐' 이러더라고요."


이 소장은 성폭력 사건을 지원하면서 이런 일을 숱하게 겪었다고 말했다. "왜 따라갔니? 안 따라가면 됐잖아?" 피해자를 탓하는 말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이런 말들 탓에 피해자는 두 번 죽는다고 했다.
 
"지적 장애인은 3급이어도 예측 능력이나 방어 능력이 떨어지거든요. 내게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걸 잘 파악을 못해요. 그런데도 검찰은 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거죠."
 

한 번은 이 소장이 너무 억울해 하니까 검사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오세요. 그러면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애인 성폭력은 수일 혹은 수개 월 뒤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늦게 알아서다. 증거가 될 만한 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낮다. 사건의 전후 관계가 기억안 날 때도 많다. 이를 두고 조금 전과 말이 다르다고 소리 지르는 검사도 있었다고 이 소장은 전했다.
 
"그래서 요즘은 모두 혐의 없음(증거불충분)으로 판결이 나요. 가해자가 처벌을 안 받아요. 예전에는 집행유예로 풀려날망정 성폭력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 소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예전에 '왜 장애인 커뮤니티에서는 미투가 안 나오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할 수가 없죠. 미투라는 게 당사자가 고발을 하는 거잖아요. 주변에서 응원을 해주고요. 장애인은 성폭력을 당해도 스스로 알리기가 어렵죠. 지적 장애인은 몰라서 못하고요. 지체 장애인이나 청각, 시각 장애인은 두려워서 나서질 못해요. 부모님들조차 지원을 안 해주시니까요. '그래도 미투 해야겠다' 그러면 집을 나와야 하는 건데, 장애인 시설이 부족하잖아요?"

이 소장은 오래 일한만큼 가슴 아픈 사연도 많이 보았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 친구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중학생 A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친구인데 어떻게 탓하니. 네가 이해해라' 그랬다고 해요. 알고 보니 당사자도 모르게 아버지가 합의금을 200만 원 받았더라고요"

이 소장은 그 때가 생각났는지 눈가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A는 현재 부모의 집을 나와 살고 있다고.

"안타까운 게, 장애가 심하지 않은 청소년 중 부모에게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집을 나와 살거든요. 예측이나 방어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혼자 살다 보니 성폭력에 또 노출되게 되고. 악순환이지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 소장은 여성 장애인들이 폭력에서 벗어나 제대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희망을 얘기했다.
#여성장애인성폭력 #대전여성장애인연대 #도가니법 #오마이뉴스이은하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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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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