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모토역에 전차 들어오는 풍경.
김보예
1932년 12월 18일, 윤봉길 의사는 오사카에서 사형 집행을 위해 비밀리에 가나자와로 압송된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해 훙커우공원의거(도시락 폭탄 사건)로 상해파견군 제9사단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상해에서의 공개 처형도 언급되었지만, 김구 선생의 체포를 위해 윤봉길 의사의 사형 집행은 계속해서 연기되었다. 그러던 도중 국제여론은 악화되었고, 이를 의식한 일제는 윤봉길 의사를 오사카성 안에 있는 제4사단 육군위수형무소에 이감시키기로 결정한다.
윤봉길 의사는 11월 18일 상해에서 호송되어, 11월 20일 오사카성 육군위수형무소로 이감된다. 그리고 오사카에서 사형이 집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가 오사카로 이감되자, 오사카 반제국주의 동맹에서 윤봉길 의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전단지를 발행하기 시작한다. 오사카 반제국주의동맹은 재일 조선인들이 많았으며,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일제를 향한 재일 조선인들의 민심은 날카로워져만 갔다. 불안함을 느낀 일제는 오사카에서의 사형 집행을 철회하고 삼엄한 경비 속에 윤봉길 의사를 가나자와로 압송시킨다. 가나자와시에 있는 모리모토역에 하차한 윤봉길 의사는 가나자와성 안에 있는 위수구금소로 보내진다. 윤봉길 의사는 위수구금소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19일) 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가나자와성 위수구금소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윤봉길 의사가 뜬 눈으로 지새운 위수구금소 건물은 현재 철거된 상태이며, 그 자리에 공중화장실이 들어섰다. 가나자와성 하시즈메문의 입장표 발권소 건너편에 있는 공중화장실이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