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루' 들어보이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26일 오전 경호권이 발동된 국회 본관 의안과 앞에서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이날 새벽 의안과 출입문 개문을 위해 국회 경위들이 사용했던 쇠지렛대(일명 빠루)를 입수해 들어보이고 있다.
남소연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은 전후 독일의 사회상을 파헤친 고전이다. 20세기 전반기 독일과 유럽의 역사를 단치히에서 뒤셀도르프로 옮겨가며 펼쳐낸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소설에서 가장 선명하게 회자되는 장면은 부두의 '말대가리와 장어'가 아닐까.
바다에서 건져낸 (물론 죽어서 몸에서 분리된) 말 대가리에서 장어가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는 모든 것을 다 토해 버린다. 이 사건은 이후 아그네스의 죽음으로 연결된다.
문학평론에서는 이 장면을 오스카의 아버지 마체라트에 의한 아그네스 학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기서 학대는 '성적 학대'다. 대표적인 강장식품으로 분류된 장어는 이미 그 모양 때문에 확고한 성적 상징으로 사용되는데, 소설에서는 관능적인 출현이 아니라 기괴하고 공포스러우며 폭력적인 출현으로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자 다층적 의미를 가진 아그네스는 당대 역사와 가부장(제)에 의해 희생된다.
여성 정치인을 소비하는 '상투성'
선거제와 개혁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요즘 국회가 시끄럽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 사태의 중심에서 전례 없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나 원내대표의 존재감은, 개인의 기억이고 정치에 그다지 정통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전제하고 말하자면, 지지세력 내에서도 대체로 양가적이었지 싶다. 기회에 민감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인물이란 느낌이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아무튼 이번 국면에서는 그러한 양가성을 불식하고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나 원내대표의 존재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보도사진은 '빠루 든 나경원'이다. 나 원내대표 스스로 이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낼 이미지와 정치적 효과를 감안했을 터인데, 본인의 기대를 훨씬 넘어선 효과를 거두지 않았을까. 폭력적 충돌의 현장에서 단호하게 맞서 싸우는 강인한 정치지도자의 이미지. 아마도 나 원내대표가 의도한 효과의 핵심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진에서 앞에서 인용한 그라스 소설의 그 장면을 떠올렸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현실정치에 대한 페미니즘적 평가와, 그 평가에 기반한 관점에 따라 상투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는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무관해 보이는 두 장면을 연결 짓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앞서 나 원내대표가 '여성'으로 소비된 정황을 간단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자. 어느 일간지는 이 사진을 넣은 기사에서 <뺏은 '빠루' 든 나경원 "할 수 있는 수단 다해 오늘도 온몸으로 막겠다>는 제목을 달았다. 제목만으로는 '온몸으로 막는'의 주어가 나경원이다.
기사를 읽어보면 주어는 "저희"로, 즉 자유한국당이다. 나 원내대표가 한 말은 "저들은 국회법을 위반했고, 국회 관습법도 위반했다.(...) 저희는 오늘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온몸으로 저항하겠다"이다. 편집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여성의 성적 소비'가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비친다.
댓글에서도 나 의원에 대한 '성적 소비'는 이어진다. "온몸으로"라는 제목을 보고 "성적수치심이 느껴지니 몸 거부한다", "온 남성을 성추행한 거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어떤 누리꾼들에게 나 의원은 이렇게 '성추행범'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나 원내대표에게 성추행 발언을 한 것이나 다름 없다. 나 원내대표 등 여성 정치인에 대한 이런 식의 성 학대적, 여성혐오적 소비는 일상적이다.
성적 소비에 대한 '선별적'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