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발생한 강원 산불 사망자 2명 중 한 명인 고 김영갑(60)씨 부인 김아무개(48)씨를 16일 속초의 한 아파트에서 만났다.
김성욱
- 어떻게 지냈나.
"그냥 이렇게 살아있어요. 벌써 한달... 아니 40일이 넘게 지났는데 안 울려고 해도 아직 눈물이 그냥 나요(눈물). 우리 딸이 중3이고 아들이 중1인데 애들이 아침에 학교 가면 저도 밖에 나가요. 혼자 집에 못 있으니까... 집에 있으면 애 아빠 생각이 너무 나서... 집이 이렇게 좁고 해도 애 아빠가 있을 땐 사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는데, 애 아빠가 없으니까 하루 하루가 너무 너무 힘들어요..."
방 3개가 옹기종기 붙은 17평 짜리 아파트 구석구석엔 남편의 흔적이 가득했다. 목공예 일을 했던 남편이 직접 만든 테이블, 남편이 누워있던 장판,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배우며 뒹굴거리던 방바닥, 그리고 햇볕 드는 책상 위에 올려둔 영정사진까지.
"애 아빠 생각 나서 힘들죠(눈물). 애 아빠만 믿고 중국에서 시집 왔는데... 중국에도, 한국에도, 그런 남자 또 없어요. 얼마나 착했다고. 그저 남 위해서, 자기 형제 위해서 다 쏟아붓고 자기는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산불 나던 날도 애들이 위험하다고 아빠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는데, 그쪽에 불 났다고... 우리 애 아빤 못 말려요. 애 아빠 누이가 나이도 있으시고 혼자 사시거든요..."
평소 홀로 사는 누나를 각별하게 챙기던 남편은 그 날도 누나 걱정에 집을 나섰다. 고인의 누나 김아무개(68)씨는 전화 통화에서 "불이 나서 놀라 내가 동생을 불렀는데 내 품에서 하늘나라로 보냈다"라며 "지금 내 심정이 어떻겠나,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아직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흐느꼈다. "누이도 너무 힘들어하고 충격 받아서 얼마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있었어요"라고 부인 김씨가 설명했다. 누나의 집은 그 날 다 탔다.
"한국에 온 지는 16년 됐는데 제가 한국을 잘 몰라요. 그저 애 아빠 뒤만 졸졸 따라다녀서... 애 아빠가 알아서 다 해줬거든요. 애들 학교 보내고 학원 보내는 것도 애 아빠가 다 했고... 저는 그저 애 아빠가 목공예 공장 가면 애 업고 졸졸 따라가고, 애 아빠가 트럭 타고 배달 다니면 옆에 타서 전국을 다 따라가고... 그러고 살았거든요. 근데 이렇게 가버리니... 애들이 아직 어린데 고등학교 대학교는 어떻게 보낼지 눈앞이 캄캄해요(눈물)."
중국 연변 출신인 김씨는 목공예 사업으로 연변을 드나들던 고인을 만나 1년 남짓 연애한 뒤 16년 전 결혼해 한국에 왔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지는 15년 됐다. 김씨는 지난 25일 정부로부터 장례비 1200만원과 구호금 1000만원, 그리고 국민 성금 1억원 등을 받았다. 김씨는 27일 전화통화에서 "이제라도 나왔으니 다행이죠... 고맙습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관련 기사 : 강원 산불 사망자 2명, 43일 지나도록 장례비도 못 받았다)
"애 아빠만 돌아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