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주인이 바뀐 의안번호 2023437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2019년 5월 14일 대표 발의해 국회사무처에서 ‘의안번호 2020437’로 발급받은 ‘수술실 CCTV 설치 관련 의료법 개정안’은 하룻밤 새 공동발의자 10명 중 5명이 발의를 철회해 폐기되었다. 그래서 ‘의안번호 2023437’은 ‘수술실 CCTV 설치 관련 의료법 개정안’에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으로 바뀌게 되었다.
안기종
철회 국회의원들은 언론에 "의원과 상관 없이 보좌관이 서명했다" "전문지식이 없어서 검토가 필요해 철회했다" 등의 해명을 내놨다. 의료사고 피해자와 환자단체는 법안 발의를 철회한 국회의원들에 대해 기자회견을 개최해 규탄했지만, 계속적으로 비난하지 않았고 비난할 수도 없었다. 철회 국회의원들이 헌법상 입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이 있지만 법안 발의에 아예 서명조차 하지 않았거나 법안 발의 자체를 반대한 다른 국회의원보다는 법안에 관심을 가져준 측면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국회의원의 입법권 행사에 있어서 의사 권력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전 국민들에게 시청각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의료계의 압박이 무서워 재발의 법안에 서명할 국회의원들이 거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듯 폐기된 법안보다 5명이 더 많은 15명이 안규백 의원의 수술실 CCTV 설치법에 재발의에 서명했다. 되레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됐다.
수술실 CCTV 설치법 반대하는 의사단체의 주장은 타당한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가 내놓는 '수술실 CCTV 설치법' 반대 이유는 다양하다. 이를 압축·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감시함으로써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깨뜨린다. 둘째, 의료분쟁 증거로 사용될 우려 때문에 의사들이 고위험 수술을 피할 것이다. 셋째,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 촬영 영상 유출로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단체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먼저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감시함으로써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깨뜨린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으려면 전국에 CCTV가 설치된 장소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고 감시당한다'고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범죄 예방이나 인권 보호를 위해 용인하고 있다. 어린이집 CCTV 설치 논쟁 때도 보육교사들이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감시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결국 어린이 안전과 인권 보호라는 공익을 위해 수용했다.
다음으로 의료분쟁 증거로 사용될 우려 때문에 의사들이 고위험 수술을 피할 것이라는 주장은 의료법에 신설돼 2016년 12월 20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수술 설명의무'와 '수술동의서 작성의무' 관련 내용을 모르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오해다.
의료법에는 의사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을 하는 경우, '진단명, 수술의 필요성·방법·내용, 수술의 후유증 또는 부작용 등'을 환자에게 설명하고 서면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만일 여기에 수술실 CCTV 영상까지 있다면 고위험 수술 후 환자가 의료사고 의혹을 제기하더라도 신속한 확인을 통해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수술실 CCTV는 오히려 고위험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들이 불필요한 의료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