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담장위에 소복하게 피어난 능소화. 잠시 사람들의 발검음이 멈춘 골목길에 서서 아름다운 정경에 빠져들었다.
김숙귀
능소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나를 한껏 들뜨게 했다. 꽃을 좋아하는 마음은 한결같지만 그중에서도 능소화의 단정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정겨운 한옥과 조화를 이루어 멋지게 피어나는 능소화를 맞이하기 위해 대구 달성군에 있는 남평문씨본리세거지를 찾았다.
남평문씨세거지는 옛 인흥사 절터를 남평문씨 일족이 정전법에 따라 구획을 정리해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열고 집을 지은 곳이다. 세거지란 남평문씨 일족이 세대를 계승하며 살아온 오래된 거주지란 뜻이다. 조선 말기의 양반가옥 9동과 별당(別堂) 양식의 정자 2동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건물들은 건축연대가 200년 미만이나 전통적인 영남지방 양반가옥답게 잘 정돈되고 단정하며 예스럽고 소박해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능소화가 필 때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몹시 번잡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나섰건만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벌써 많은 차들이 세워져 있다. 되도록 사람들의 동선과 겹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느긋하게 옛 담장이 있는 골목길을 걸었다. 곳곳에 담장 위로 한 무더기 능소화가 바깥을 향해 피어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