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의 이름과 민원내용은 개인정보가 아니라고 한다.
수확의계절
민원인의 이름이 개인정보가 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민원인의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논리에 의하면 같은 마을, 같은 학교, 같은 회사, 같은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공간에서 민원을 제기하면 민원인의 이름과 민원내용은 '개인정보'가 아니란 뜻으로 해석된다. 즉, 같은 학교나 회사·기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다른 직원의 비리사실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을 때, 담당 공무원이 그 민원인의 이름과 민원내용을 '비리직원'에게 알려도 개인정보 유출로 처벌받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민원처리법 제7조에는 "행정기관의 장은 민원처리와 관련된 민원의 내용과 민원인 및 민원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특정인의 개인정보 등이 누설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하며..."라고 적시되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형사처벌에 관한 규정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정보보호법으로 고소했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민원인의 이름과 민원내용은 개인정보가 아니므로" 불기소처분해 버렸다. 최소한 재판정에서 죄를 심판받을 기회라도 달라고 항고했지만, 그 역시 기각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원제도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피해자만 양산하지 말고 차라리 솔직히 말하자. '민원정보는 언제든 유출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해고, 따돌림 등의 각종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각오하고 민원을 올리세요'라고.
그런데 이 기사를 쓰기 위해 불기소이유서를 여러 차례 읽어보다가 더 황당한 사실을 발견했다. 불기소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용한 법 조항이 본 사건과 무관한 내용이었다.
사건은 두 개인데, 불기소 이유는 거의 비슷해
②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 11조 제3항에서는 '공공기관은 공개 청구된 공개 대상 정보의 전부 또는 일부가 제3자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그 사실을 제3자에게 지체 없이 통지하여야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그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상대방이 있는 민원 사항 역시 필연적으로 청문 절차 등 상대방의 진술 청취 과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이 사건 담당 공무원인 피의자는 위 고소인의 민원 제기 사실 등을 마을 기부금 할당 담당자인 이장 ○○○에게 결국 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점…(불기소 이유 중에서)
이 사건은 국민 신문고에 올린 민원내용을 담당 공무원이 관련자에게 유출한 사건이다. 즉 검사는 전혀 다른 사건에 적용될 법 조항을 끌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으로 두 건을 고소했는데, 그 한 건이 본 사건, 즉 국민신문고에 올린 내용을 담당 공무원이 이장에게 알린 사건(아래 A 사건)이고, 다른 한 건이 바로 '정보공개청구'한 내용을 이장에게 알린 사건(아래 B 사건)이다.
A 사건과 B 사건은 사건 번호, 사건 내용, 피고발자도 다른 별개의 독립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두 건을 같이 담당한 검사는 A 사건을 불기소하면서 B 사건에서 인용한 법 조항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