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라도 찾아주세요" 유엔에 진정서 낸 일제 강제동원 유족들

[단독] 사할린서 귀국 못하고 실종상태인 25인의 유족...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에 제출

등록 2019.08.07 11:59수정 2019.08.0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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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1일 경남 창원시 정우상가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상 제막식'이 열렸다. 일제강점기 때 아버지가 사할린으로 끌려간 김수웅(74)씨가 노동자상을 부여 잡고 울고 있다.
2018년 5월 1일 경남 창원시 정우상가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상 제막식'이 열렸다. 일제강점기 때 아버지가 사할린으로 끌려간 김수웅(74)씨가 노동자상을 부여 잡고 울고 있다.윤성효
 
일제강점기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유엔(UN) 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에 진정서를 제출해 강제실종 상태의 해결을 호소했다. 일본이 일제강점기 불법 강제동원과 이에 따른 개인청구권 및 배상을 부정하며 한일 갈등이 빚어지는 가운데, 강제동원 관련 과거사가 유엔에 진정된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사할린 강제동원 억류피해자 한국잔류유족회'(회장 신윤순)와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 총동원 체제하에서 당시 일본령이었던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다가 전후 소련군 진주 후 귀국하지 못한 25인에 관한 진정서를 7일 오전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신경철(1919년생), 이인선(1918년생), 오성수(1916년생), 정연봉(1913년생), 박동개(1906년생) 등 25인(최연장자 1904년생 ~ 최연소자 1925년생)으로,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사할린섬으로 강제동원된 뒤 현재까지 생사와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강제실종 피해자들이다.   

WGEID가 유족들의 진정서를 수리하게 되면 러시아 정부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관계국 정부에 진정서를 전달하는 절차를 거치고, 강제실종 상태의 해소를 각 정부에 촉구하게 된다. 이때 강제실종 상태는 실종자의 생사 및 행방이 확인될 때까지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유족들은 유해 발굴 업무를 전담할 '일제 강제동원 조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관련 상설 조직을 국무총리실 산하에 만들어 실태 조사 및 진상 규명을 하고, DNA 은행을 설립해 유해 발굴 및 송환을 전담하자는 내용이다. 

또 일제강점기를 1904년 대한제국 중립 선언부터 1945년 광복까지로 규정해, 강제동원·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731부대 생체 실험, 관동대학살 등 그간 우리 정부가 다루지 못했던 피해까지 포함하도록 했다.

이번에 유엔에 진정서를 낸 백봉례 할머니(94)는 결혼한 지 10달 만인 1943년 9월 남편 신경철(이명 신완철, 창씨명 平山京澈·히라야마 케이테츠)씨가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다. 당시 백 할머니는 딸을 임신 중이었다. 신씨는 딸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머나먼 타국 땅으로 끌려갔다.

백 할머니의 딸 신윤순씨는 아버지가 끌려간 1943년 그 해에 태어났다. 올해 75세가 됐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전혀 모른다. 백 할머니는 76년째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신씨는 사할린 희생자 유족이 아버지의 유골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부럽기만 하다. 그는 아버지가 사할린섬으로 끌려간 뒤 어디서 살다가 언제 돌아가셨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신씨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기 위해 '사할린 강제동원 억류피해자 한국잔류유족회'를 만들어 지난 10년간 활동해왔다. 


현재 파악된 사할린의 강제동원 희생자 묘는 5048기  
 
 일제강점기 사할린 강제동원 노동자 무연고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곳.
일제강점기 사할린 강제동원 노동자 무연고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곳.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우리 정부가 2011년부터 시행한 '사할린 한인 묘 현황 파악 사업' 결과, 한인의 묘는 공동묘지 67곳에 1만 5110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의 묘는 5048기로 나타났다. 이중 4170기의 유족을 확인했다. 이후 2013년 1위 시범 봉환을 시작으로, 지난 2018년까지 총 71위의 유골이 국내로 돌아왔다. 3000명이 넘는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 대다수는 여전히 사할린에 있는 가족의 유해 봉환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내 유족들은 일제 패망 이후 사할린과 서신 교환이 뜸하게 이뤄지다가 1950년 6.25 전쟁 발발을 전후해 교신이 끊어졌다. 한국 정부는 1960년대 말부터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사할린 한인 송환을 추진했다. 그러나 한-소 외교관계 부재로 진전이 없었고, 국내의 부인과 자녀들은 연좌제 우려 때문에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연구원(법학 박사, 국제법 전문가)은 지난 6일 "WGEID에 지난 2001년 북한이 1939~1944년까지 강제동원자 29명의 강제실종을 주장하는 진정서가 제출됐으나 당시 국제 무력분쟁 중의 강제실종은 다루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어서 처리되지 못했다"면서 "해당 규칙은 2012년 1월 1일부로 삭제됐다. 이번 WGEID 진정을 통해 사할린 한인 유해 발굴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정부 차원에서 전담 기구 설치와 적절한 예산, 인력 편성 등이 실현돼 한국 내 사할린 유족들의 수십 년 된 한이 풀리는 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강제동원 #강제징용 #유엔인권이사회 #유엔강제실종실무그룹 #사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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