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인권네트워크 야스민 울라 대표는 '로힝야를 비롯한 미얀마 내 소수민족 여성의 목소리'는 주제로 발언했다.
로힝야와 연대하는 시민사회모임
- 19년간 무국적자로 살아왔다고?
"그렇다. 나는 로힝야족이다. 그래서 미얀마에서 태어났음에도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1995년에는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피난을 갔는데 이곳에서 2011년까지 무국적자로 살아야 했다. 2012년에 운이 닿아서 캐나다로 이주할 수 있었고, 그때 첫 시민권을 얻었다. 19년 만에 한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미얀마 정부는 1982년 새로운 시민권 법을 통과시키면서 무슬림인 로힝야족을 자국 내 소수종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방글라데시 출신 불법 이민자'로 규정하며 시민권을 박탈했다. 이후 대안으로 나온 게 '국가확인증'(National Verification Card, NVC)이다.
미얀마 정부는 NVC가 시민권의 대체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힝야 인권단체들은 "이는 로힝야족을 정식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고히 하는 것"이라며 비판한다. 현재 로힝야족은 미얀마 정부에 정식 시민권을 요구하고 있다.
- 피난을 떠난 건 언제인가?
"내가 정말 어릴 적의 일이다. 잘 걷지도 못하는 날 엄마가 안고서 피난길에 오르셨다. '로힝야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아온 가족사를 끊어내고 싶으셨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가족사와 관련해서는 대표적으로 우리 할머니 얘기를 할 수 있겠다.
1942년에 할머니는 남동생 하나만 남기고 가족을 모두 잃었다. 미얀마군에 의해 가족이 모두 살해 당한 거다. 이후 할머니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셨다. 그곳이 제가 태어난 고향인데, 할머니는 그 이후로 한동안 가난에 허덕이셔야 했다. 단 한 번도 구제받지 못하셨다.
이런 것들을 포함해 집단 학살까지 목격하신 엄마는 더 이상 미얀마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셨다. 그래서 1995년도에 태국으로 가는 피난 배에 올라타셨다. 물론 피난길도 고난이었다. 엄마가 탔던 것은 남성 군인들로 가득 찬 배였는데, 여기서 갖은 폭력을 당했다고 하셨다. 그래도 이 순간을 참으면 새로운 곳으로 가서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견디셨다고 했다."
- 미얀마에 이어 태국에서도 무국적자로 살아왔다. 그간의 삶은 어땠나?
"미얀마에서의 개인적인 기억은 거의 없다. 너무 어렸을 적 일이기 때문이다. 태국에서는 매 순간이 차별이었다. 태국은 이민자에 닫혀 있는 나라다. 사회 전반에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만연해 있다. 그래서 태국으로 떠나온 이후에도 항상 숨어다녀야 했고, 경찰이 있는 곳이면 늘 도망 다녀야 했다. 언제 추방 당할지 모른다는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해오면서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태어난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난 누구인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이 땅에서 사람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기회조차 없었다."
"강간이 지속되는 이유는 정부도 방관하고 있기 때문"
- 19년간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인가?
"사람들의 편견이다. 난민은 게으르며, 정부 보조금으로만 먹고 산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 가족만 해도 태국으로 옮겨온 이후 생존을 위해 미친 듯이 일했다. 부모님을 하루에 한 시간밖에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기회가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나라는 사람의 필요성과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늘 나는 로힝야족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당했다.
내 경험을 비롯해 할머니와 엄마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을 수 있다. 내가 태어난 곳 미얀마에서 자행된 '비인간화' 작업에 의해 발생된 피해라는 거다. 미얀마에서 발생한 인종 탄압은 우리를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미얀마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우리의 과거는 내 가족 모두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 미얀마에 남아 있는 로힝야족 여성들의 상황은 어떤가?
"아직도 집단 강간이 이뤄지고 있다. 적게는 8살 아이부터 시작해, 전 연령의 여성들이 강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강간을 일종의 군사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성들의 가치를 하락시키면서 장기적인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공동체의 가치를 크게 손상시키면서 위협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로힝야족 여성들은 군부의 피해자인 동시에, 공동체에서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여성의 가치를 정조에 두고 있는 사회문화적 기조 때문이다. 여성들은 서로 연대하지 못한 채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더 극대화된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양희 UN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은 "미얀마 내의 집단 강간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UN에 보고된 사례 가운데에는 자신의 아이 앞에서 강간 피해를 당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호셍 미얀마 샨족 여성운동네트워크 활동가는 "제가 만났던 군 관계자로부터 일부 고위직 사령관들이 강간한 사실을 자랑삼아 말한다는 것을 들었다"며 "강간이 지속되는 이유는 군인들뿐만 아니라 정부도 이를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정부에 소수민족 박해에 대한 책임 물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