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미운우리새끼>에 출연하고 있는 김건모씨
SBS 영상 캡처
가수 김건모 씨의 성폭력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극적‧선정적인 보도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6일 김세의 전 MBC 기자와 강용석 변호사가 설립한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의 유튜브 라이브입니다. 이날 가세연은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건모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증언을 전했습니다. 이후 9일과 17일에 라이브 방송에서도 김건모 씨를 둘러싼 성폭력 의혹을 전했습니다.
유튜브라는 공간의 특성과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유튜브 라이브'의 특성으로 인해 이 영상은 시민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자극적으로 가해 방법이 묘사되고, 피해자가 성적 행위의 대상처럼 인식될 만한 선정적인 내용 설명이 나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매우 선정적인 내용의 유튜브 방송을 언론이 마구잡이로 받아쓰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시 정황증거를 말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튜브라는 규제 영역 바깥에 있는 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가로세로연구소는 이를 잔뜩 선정적으로 부풀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방송심의규정 및 신문윤리강령,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등의 다양한 준칙이 존재하고, 기성 매체는 이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이라면 이런 가로세로연구소 방송 내용 중에서 기사화해선 안 되는 내용을 판단해서 걸러줬어야 합니다. 그러나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포털에서 '김건모'를 검색하여 지난 6일부터 나온 기사 중 문제의 기사를 살펴보니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취지는 외면한 채, 선정적이며 인권 침해적인 보도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상세한 성폭력 피해 묘사
6일과 9일 나온 가세연의 유튜브 라이브 이후 기사들도 문제가 많았지만, 특히 17일 나왔던 유튜브 라이브에서 더 선정적인 가해 방법이 많이 묘사되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유튜브 라이브에서 그런 내용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기성 언론이 이를 기사화하는 것이 정당화될 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브 당일인 17일과 다음 날인 18일까지 계속 유튜브 내용을 그대로 옮기다시피 한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게다가 이런 선정적 보도를 내놓는 양상은 주요 일간지나 주요 방송사 인터넷판은 물론, 주요 경제지‧연예 스포츠 매체‧위키트리와 같은 인터넷 언론 모두 비슷했습니다.
주요 일간지 중에서는 서울신문 <"왁싱여부 본다며 만지려 했다" 김건모 제보 또 나와>(12/17 김유민 기자), 국민일보 <"소파에서 본인 걸 보여주고…" 김건모 세번째 피해자의 말>(12/18 신은정 기자), 조선일보 <가세연, 김건모 세번째 피해 주장녀 인터뷰 "작업실서 바지 지퍼내려">(12/18 황민규 기자) 등의 기사가 있었고요. 주요 경제지 중에서도 한국경제 <김건모, 법정 싸움에도 계속되는 폭로…가세연 "신체 노출하며 '좋아하냐' 물어">(12/18 김수영 기자), 매일경제 <가세연, 김건모 세번째 피해자 인터뷰 공개 "작업실서 지퍼 내려…">(12/18 김소연 기자), 아시아경제 <"김건모, 왁싱했냐며 신체 만지려 했다" 성추행 의혹 추가 폭로>(12/18 김가연 기자) 등을 내놨습니다.
연예스포츠 매체 중에선 스포츠경향 <"김건모, 제모했냐며 신체 만지려 시도…이런 수위는 처음">(12/17 이선명 기자), 헤럴드POP <'가로세로연구소', 김건모 피해 추가 폭로 "바지 지퍼 열어 보여줬다"(종합)>(12/17 이미지 기자)가 있었고 위키트리 기사 중엔 <김건모 피해 주장 여성 "피아노 옆쪽 쇼파에 누워 성기 보여줬다">(12/17 빈재욱 기자)도 있었습니다.
내용은 더욱 문제가 심합니다. 위키트리 기사에서는 선정적인 내용을 앞에 제시하면서 17일 라이브에서 나온 피해자의 발언을 기사화했습니다. 피해자가 유튜브 라이브에서 증언한 "전자 건반 피아노 옆쪽에 소파가 있었다. 거기에 이제 본인이 누워서"라고 시작하면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내용을 기사에 실었습니다. 서울신문 기사에서도 피해자의 발언을 전하면서 김건모가 어떻게 성폭력을 저질렀는지 자세히 전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것은, 성폭행 피해 사실을 너무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써 2차 피해를 일으킨다는 문제와 더불어 성폭행 피해 사실 자체를 성애화하게 되고 가십으로만 성폭행 피해를 다룸으로써 범죄의 심각성을 낮추게 되는 아주 총체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2018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함께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서는 △언론은 성폭력·성희롱 사건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다루거나,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는 보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언론은 성폭력·성희롱 사건의 가해방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특히 피해자를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피해자 스스로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미투'라고 해서 이런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유튜브 라이브에서 본인이 밝힌 것이니' 보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언론임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김건모 성폭력 보도는 클릭 장사를 위해서, 선정성만을 잔뜩 부각시킨 기사라는 겁니다.
유흥업소 직원은 강간해도 된다? 문제적 의견을 비판 없이 전달
문제의 기사는 한국경제의 <"유흥업소 직원인데 '강간죄'라니…" 김건모 사건 후폭풍>(12/10 신연수 기자)입니다. 기사의 시작은 "노래방 도우미 강간미수, 기소유예 가능한가요?" "텐XX 직원이 성추행으로 고소했습니다."입니다. 김건모 씨가 유흥업소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논란이 되자, 유흥업소 종사자와 성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이게 강간죄가 되냐'며 법률 상담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 이 기사의 요지입니다. 기사는 이어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온라인 법률 상담 사이트와 개인 변호사 블로그 등에는 김씨와 마찬가지로 노래방 도우미, 룸살롱 접대부 등 유흥업 종사자들로부터 강제추행, 성폭력 등 혐의로 고소당한 상담 사례가 수십 건 올라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의 문제는 '유흥업소 직원을 상대로 왜 성관계하면 안 되냐'는 범죄적 시선을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유흥업이 합법인 한국에서 유흥업소 직원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흥업소 직원이 곧 성판매자일 것이란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으로 특정 성별과 특정 직업군을 성적 대상화 하는 시선입니다. 한국경제는 제목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의 말을 따옴표 처리해서 "유흥업소 직원인데 '강간죄'라니"라고 썼습니다. 한국경제는 기사를 통해 유흥업소 직원에 대한 강간을 부추기고 싶었을까요? 유흥업소 직원에 대한 성폭력을 합리화하는 의견을 비판 없이 그대로 전달해선 안 됩니다.
비슷한 문제는 세계일보 <김건모 성 추문 이어지자 누리꾼 일각 젠더 이슈화 "술집녀가 미투하는 시대">(12/18 장혜원 기자)에서도 발견됩니다. '유흥업소 직원들의 미투 운동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댓글을 모아놓은 기사입니다. 세계일보는 왜 굳이 이런 댓글을 모아 기사를 썼을까요? 미투 운동에 나서는 데엔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짓 미투'란 프레임을 재생산하기도
13일 김건모 씨 측 소속사에서 보도자료를 내고 "김건모는 해당 여성은 물론 피해사실 조차 전혀 모른다", "해당 여성을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고소한다", "진실된 미투는 보장돼야 하지만 거짓 미투, 미투 피싱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서는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전달하여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호기심 어린 질문 및 남성 중심적 통념에 근거한 질문은 삼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경제의 <김건모 측 "'성폭행 주장' 여성, 무고로 고소…거짓 미투 없어져야">(12/13 신지원 기자), 중앙일보 <김건모 측 "거짓 미투 없어져야" 성폭행 피해 주장녀 맞고소>(12/13 배재성 기자), 동아일보 <김건모 "미투를 가장한 거짓 미투"…무고로 맞고소>(12/13 박태근 기자) 등 주요 일간지 인터넷판은 '거짓 미투'라는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쓰고 있습니다.
특히, 위키트리에서는 <"접대부를…" 침묵하던 김건모,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전문)>(12/13 권미정 기자)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는데요. 제목에서 '접대부'라는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일단 문제입니다. 이 표현은 여성 비하적이고 성차별적인 단어입니다. 김건모 씨 측에서 낸 입장문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접대부(강용석 변호사 보도자료의 표현 인용)로, 모 유튜브 방송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김건모의 취향을 이용하여 거짓으로 꾸며낸 사실을 마치 용기를 내어 진실을 폭로하는 것처럼 하였습니다"라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대부라는 표현을 기사 제목으로 뽑는 것은 문제입니다.
피해 여성이 '신변보호' 요청한 것을 왜 부각하나
지난 14일엔 피해 여성이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 여성이 전 국민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김건모 씨를 상대로 성폭행 범죄 사실을 밝히고 있는 데다 성범죄 피해자라면 그 자체로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피해자가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을 부러 기사화해서 집중 조명하는 보도들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면 중앙일보 <윤지오 받은 신변보호…'김건모 성폭행' 주장녀도 가능할까>(12/16 남궁민 기자)를 보면, 올해 초 고 장자연 씨 사건의 증언자로 신변보호 요청을 했던 윤지오 씨를 제목에 내세우면서, 마치 피해 여성이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걸 공론화시키고 있습니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 피해 여성의 신변보호 요청을 지적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올해 초 윤지오 씨가 신변보호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했었기 때문입니다.
또 국민일보 <'미우새' 하차한 김건모와 신변보호 받는 여성…성폭행 폭로 후 엇갈린 행보>(12/17 천금주 기자) 기사에서는 '김건모는 미운우리새끼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는데, 피해 여성은 신변보호를 받는다'는 식으로 적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이러해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을 제시하면서 이분법적으로 그리고 있어 문제입니다. 게다가 피해 여성이 마치 대접받고 있는 듯한, 사회에서 대단한 호의를 받고 있는 듯한 묘사는 왜 필요할까요?
데일리안 <'김건모 곧 소환' 피해자 신변보호 요청 왜?>(12/16 이한철 기자)도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붙임으로서 마치 신변보호를 요청한 이유를 궁금해 했습니다. 제목에서 부러 '왜?'라고 물음으로서 신변보호 요청을 부각하고, 앞서 소개했던 중앙일보 기사와 마찬가지로 마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드는,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기사라 문제입니다.
김건모 의혹 외에도 이어지는 '가세연 받아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