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선 후보 부부가 제5대 대통령 선거에 투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정신적 대통령'
이로 보아 윤보선 후보의 색깔론과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는 선거 전략은 패착이었음 알 수 있다. 후속 기사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윤보선과 박정희는 이생에서 악연이 있었다. 윤보선 대통령은 본인이 뜻하지 않게 5.16 쿠데타 성공과 박정희의 집권에 일등 공신역할을 단단히 했다.
동물의 세계에서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데, 윤보선 후보는 상대 박정희 후보를 대단히 얕잡아보고 안일한 선거 전략을 짰다. 그리고 끝까지 완주한 군소 후보 어느 한 사람도 사퇴시키지 못했다.
5대 대선 당시 장리석은 19만 표, 오재영은 40만 표, 변영태는 21만 표를 얻었다. 그 가운데 어느 한 후보라도 협상으로 사퇴시켰더라면 선거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는 정치력 부재라 아니할 수 없다. 아마 윤 후보 측은 '뒤늦은 후회'를 했을 법하다. 하지만 윤 후보의 그릇이나 지략은 그것밖에 되지 않았나 보다.
대통령 선거 후, 윤보선은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라고 하면서 자신을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칭했다. 그 말은 언론에 유행어처럼 많이 오르내렸다. 그 말과 함께 시중에는 '헌 버선'이라는 별명이 나돌았다.
윤보선은 5대 대선에서 취한 전략을 같은 해 11월 26일에 있었던 6대 총선에서도 그대로 사용했다. 색깔공세 말이다. 그 결과, 공화당 110석, 민정당 41석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윤보선의 곁엔 앞을 내다보는 지략의 참모가 없었던 듯하다. 그가 유능한 참모는 멀리 하고, 낡은 옹고집 지당 참모들을 곁에 둔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두가 세상의 풍상을 모르고 자랐던, 영국 에든버러대학에서 고고학까지 공부했지만 백성들의 바닥 마음을 읽지 못한 그의 한계였을 것이다.
그때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가 쿠데타와 군정의 부당성을 강조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선거 전략으로 정책 대결했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20~30년은 더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더라면 이후 젊고, 아까운, 숱한 학생들의 희생도 막아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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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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