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지기 친구들과 여행을 하다.
pixabay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동창회나 사은회를 통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남을 이어온 게 전부였다. 한창 일을 할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만남이 생활의 곁가지 정도였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우린 서로를 궁금해했다. 뒤를 돌아보게 되면서부터는 보고 싶은 얼굴이 늘어갔다. 자식들이 출가할 무렵부터 마음이 맞거나 시간이 되는 친구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낚시나 등산을 함께 하는 등 소소한 모임을 했다. 즉 곁가지에서 삶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거기에 일조를 한 것이 '네이버 밴드'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알람은 모임 일정부터 각자의 안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르느라 분주했다. '남자들 수다가 더 심하다'는 아내의 말처럼.
지난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재용이로부터 초대장이 날아왔다. 천안의 한 학술원에 내려가 지내던 재용이는 이틀 동안 자신과 함께 지내며 토종닭으로 원기도 회복하고 천안 구경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열 명의 친구들이 오늘 천안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천안은 여행하기보다는 출장이나 여행 갈 때 잠시 들르는 곳이었다. 이번 기회에 머리로만 알고 있던 곳을 직접 가보리라는 치기 어린 결심을 했다. 특히 이번만큼은 누구의 남편이나 누구의 아빠에서 벗어나 내 모습 그대로를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천안역에 도착하니 마중 나온 재용이와 미리 도착한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들을 여행길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웠다. 우리들은 마치 대학 시절 MT 때처럼 장도 보고, 길을 걸으며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학술원의 첫인상은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학술원을 둘러본 후 정자에 올라 자리를 잡고 둘러앉아 재용이가 준비해 놓은 음식을 먹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술잔을 주고받았다. 흥이 많은 천기를 시작으로 노래도 한 가락씩 뽑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세상을 안주 삼아 느긋함을 즐겼다.
기성세대를 비난하던 나, 기성세대로 살아가다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이미 짜인 세상의 틀에 맞춰가는 삶이 전부였던 그때와 40여 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지금, 60이라는 숫자는 만족감보다 속절없음을 더 와 닿게 했다. 아마 삶의 덧없음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만큼은 정해진 길을 갈 거로 생각했어. 교지에 네 글이 실릴 때마다 선생님도, 우리도 깜짝 놀라곤 했었잖아. 너는 좀 특별했어. 나이에 맞지 않는 사고로 써 내려간 글은 지금 읽어봐도 와 닿거든. 언젠가 작가로 나타날 거라 믿었는데 왜 글을 쓰지 않은 거야? 능력 아깝게."
"능력은 무슨."
"먹고 사는 게 우선인 시대 아니었냐. 지금이라도 써 보는 게 어때? 시간도 많은데. 오히려 그동안 경험이 쌓여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야. 이제는 첫 문장을 쓰는 것부터 겁이 나... 한 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