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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고구마를 보낸 뒤에 있었던 일

코로나 19와 세 부류의 사람들

등록 2020.03.19 16:02수정 2020.03.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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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20일 오전 10시 44분]


정치 사회적 쟁점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대구에서 코로나19가 무섭게 번질 때였다. 오랜 친분을 가진 후배가 자기가 농사 지은 고구마를 200상자나 대구로 보낼 때 보게 된 현상도 그렇다. 대구에 사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주소를 확인하는데 반응이 딱 세 부류였다.

먼저, 공짜라니까 반가워서 얼른 주소를 찍어 보내는 사람은 평균적인 반응에 속한다. 두 번째는 좀 적극적인 사람들인데 그 적극성이 자기(주변)만을 챙기는 적극성이다. 식구가 많다면서 두 상자 달라는 사람, 자기 친구 주소를 보내도 되냐는 사람이 있었다. 그럴 만하다.

세 번째로 좀 특이한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고맙다면서 택배비 정도는 자기가 내겠으니 착불로 부치라거나, 송금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분의 문자를 보고 나는 대구 사람들의 주소 모으기에서 한 반 더 나아가 후배의 고구마 택배비 모금에 나섰고 100만 원 넘게 돈이 모였다(대구에 고구마 1톤 보내기 대작전 https://c11.kr/dyfr).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을 주고 받다
 
 대구에 발송할 고구마 택배 상자.
대구에 발송할 고구마 택배 상자.전희식
 
그 후배도 알고 보니 옆집 고구마 농가에서 대구에 고구마를 보낸다기에 다짜고짜 자기 고구마 창고도 개방했던 거였다. 이처럼 좋은 현상을 봤으면 바로 자기도 그렇게 따라 하면서 서로 감동을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오래전부터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지금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한국 아난다마르가 명상요가 협회'의 사례도 엇비슷하다.


전북 완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명상단체에서 대구를 돕자며 모금을 시작했다. 그러자 대구에서 시민활동을 하던 회원이 발 벗고 나섰다. 그(녀)는 매일 대구 상황을 알려왔다. 생각보다 심각했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사회의 취약계층 중심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행정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일용직 노동자나 독거 노인 등 사회적 약자 중심으로 집 집마다 방문하여 의료용품과 먹거리를 나눠주었다.


아난다마르가 회원들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의료용과 일반용 마스크를 1000장씩 사서 대구로 보냈다. 활력있는 음식인 채식으로 도시락을 만들고 과일도 매일 나눴다. 한 회원은 현미 떡을 해서 대구로 싣고 갔다.

주류 언론이나 사회적소통망(SNS)에서는 코로나 19 사태의 현황과 분석, 대응책도 많았지만 대체로 갈등과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비판 기사와 그런 상대에 대한 비난이 많았다. 퍼 나르는 정보들도 여기저기에 수북했다. 특히 보수 언론들은 자신의 전날 주장과도 상충 되는 논리로 정부 비난에 몰두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구마 모금을 끝낸 내가 아난다마르가의 대외 모금팀장을 맡다 보니 대구에 고구마 보낼 때와 비슷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또 보게 되었는데 차이는 세 번째 부류가 훨씬 많아진 점이다.

모금의 취지와 대구에서의 활동을 보고는 덮어놓고 바로 모금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았다. 계좌번호도 안 묻고 토스나 카카오페이로 보내는 사람들이다.

다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바쁜데 딱 마스크 한 장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종횡무진 하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격려 문자를 보내오는 사람들이 있어 큰 힘이 되었다. 다른 곳에서 하는 대구 지원 활동에 참여 중이라면서 힘 모아 코로나를 이기자고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 감동적인 문자들은 "대구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몸으로는 따라 하지 못하고 돈만 내서 미안하다"는 문자도 있었다. 이렇게 모인 대외 모금액만 217만 원이나 되었다. 아난다마르가를 통해 모두 대구로 보냈다.

공개 모금 활동에서 조심스러운 일들

이 과정이 꼭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공적인 명분을 내세우고 하는 공개 모금 활동이라는 게 간단하지가 않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나, 개인 친분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어서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많다. 서로 잘 안다는 것에 기대어 안일하게 생각하고 돈을 걷었다가 사단이 생기는 수가 있다. 그런 경우를 종종 봐 왔었다.

우선, 모금 활동의 취지와 목적이 분명한 공익성을 띠는 것과 함께 돈 쓰임의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모든 과정의 투명성은 기본이다. '아난다마르가'가 비록 비영리 사단법인이긴 해도 지정 기부금 단체에 등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모금에서 공익성을 온전히 담보하는 단체는 아니었다. 미리 기부금 단체로 등록해 놓았다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여 귀한 돈을 낸 기부자에게 소득공제 혜택도 줄 수 있을 것이다.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난다마르가의 공익성을 정부로부터 법적으로 공인 받았다는 신뢰성이 더 크다 하겠다.

이런 한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난다마르가 대구 시민 돕기 대외 모금 팀장'이라는 직함을 갖는 것이었다. 이 직함으로 내 개인적 친분관계를 일정한 수준의 공적 관계로 높이는 구실을 하도록 했다.

개인적인 모금을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모금에 참여한 사람과 심적 채무 관계가 되는 수가 있다. 모금해 준 사람이 다른 공적인 일로 모금을 벌이거나 개인 경조사가 생기면 절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공의 모금이라는 것도 상대에게 부담감을 줘서는 안 되기에 불쑥 계좌번호를 내밀지는 않았다. 뜻과 취지에 공감해서 함께 할 의사가 있다고 문자 주신다면 그때 계좌를 드리겠다고 공지했다.

모금에 참여한 분들에게는 그때그때 모금 실황을 보고했다. 돈이 대구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대구에서 일하는 회원이 보내오는 사진과 활동 일지도 보내 주었다. 

모금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반응과 우리 사회를 더 가까이 지켜보게 되면서 나는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의 호민론이 떠올랐다. '묻지 마 복종'과 '묻지 마 준법'만 강조하는 사람을 항민(恒民)이라고 했고, 허구헌 날 불평과 불만, 비난만 일삼는 사람을 원민(怨民)이라 했다. 그리고는 호민(豪民)이다. 재난과 위기를 맞아 공동체를 복원하는 기회로 여기고 팔 걷고 개선에 나서는 사람들이다.

비난과 불평보다 고통을 치유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호민이 나서면 항민과 원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허균은 설파했다. 코로나19 앞에서 벌이는 논란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노력임을 모르지 않는다.

정책 담당자나 정치권에서 논란을 벌이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위기 앞에서는 논란이 소모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면서 아픔을 더는 쪽에 더 큰 비중을 두었으면 한다. 호민만이 아니라 호언론(豪言論), 호정치(豪政治), 호교육(豪敎育), 호의료(豪醫療)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립니다.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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