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1974년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도널드 베이커. 1980년 연구를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980년 5월 27일 광주에 가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의 끝자락을 목격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널드 베이커 제공
폭력, 그리고 저항
<오마이뉴스>는 데이비드 돌린저와 도널드 베이커를 비롯해 총 4명의 외국인과 '5.18 왜곡'에 대해 이메일로 인터뷰했다(원래 4월에 그들을 직접 만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인터뷰 일정이 미뤄졌다). 그들은 모두 평화봉사단에 소속돼 있었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로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교육, 의료, 농수산기술 등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한국엔 1966~1981년 평화봉사단이 들어와 있었는데, 인터뷰 한 4인은 5.18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다.
데이비드 돌린저와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는 5.18의 상당 기간 광주에 머물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고인이 된 팀 원버그(Tim Warnberg)와 함께 광주 시내 곳곳을 다니며 현장을 목격했고, 외신기자 인터뷰를 주선·통역했다. 데이비드 돌린저는 당시 자신이 목격한 것과 찍은 사진을 다른 평화봉사단원에게 전했고, 이 내용은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폴 코트라이트는 최근 당시의 경험을 담아 회고록 <5.18 푸른 눈의 증인>(영문판 < Witnessing Gwangju >)을 내놨다.
데이비드 돌린저 "5.18은 억압받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일치된 노력이었다. 결코 폭동이 아니었고 시민들은 서로를 아꼈다. 그들은 5월 21일 밤 도청 건물에서 군대가 후퇴한 후 도시를 청소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평화적인 결말을 맺기 위해 협상에 대한 노력의 증표로 무기를 회수한 시민들이었다. 북한은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폴 코트라이트 "5.18을 폭동이라고 주장하거나 북한이 연관돼 있다는 관점들은 완전히 쓰레기다. 내 회고록에도 이것에 대한 언급이 있다. 나는 당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었고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을 회고록에 썼다. 5.18의 모든 것을 알 순 없지만 내가 목격한 모든 것은 5.18이 전두환 군부세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에 대응한 민중들의 봉기였다는 견해를 뒷받침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