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에도 성소수자 혐오 유발 단어 제목에 사용한 MBN <굿모닝 MBN>(5/8)
MBN
'언론 자유' 말하고 싶다면 '소수자 혐오'부터 멈춰야
MBN이 자사 보도에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국민일보도 제목만 수정했을 뿐, 성찰하고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5월 11일 국민일보 <교회언론회 "'이태원 게이 클럽' 보도는 공익 위한 것">(5/11 백상현 기자)는 "'게이 클럽'이라 보도한 것은 공익적 보도이며 보호받아야 할 언론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교회언론회 성명을 받아썼습니다. 자사가 하고 싶은 말을 교회언론회의 입을 빌려 한 것이죠. 각계에서 쏟아진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성소수자 혐오가 여전히 강력히 작동하는 우리 사회에서 성적 지향을 동의 없이 공개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아닙니다. 해당 보도는 그 어떤 공익도 없으며 성적 지향을 이유로 타인을 터부시하고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혐오와 차별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2. 성소수자 향한 혐오, 도 넘어선 국민일보
성소수자를 터부시하는 보도, 습관화된 국민일보
문제는 국민일보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라고 봐도 충분할 만큼 그간 성소수자를 터부시한 보도를 양산해왔다는 점입니다. 최근 사례부터 보자면 3월 26일 국민일보 <이 와중에... 동성애자들에 서울광장 열어준 서울시>(3/26 유영대 기자)는 서울시가 퀴어문화행사 개최를 허가한 점을 비판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동성애자들"이라는 표현으로 써 마치 성소수자에게는 서울광장을 열어주면 안 되는 것처럼 강조한 점이 눈에 띕니다.
보도 내용은 "동성애자들에게 서울광장을 음란 알몸 놀이터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산대 길원평 교수의 주장,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광화문 일대 거리집회를 일절 불허해 온 서울시의 이 같은 노골적이고 편향적 행정에 할 말을 잃었다"는 한국교회연합의 입장을 포함해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동성애동성혼합법화반대교수연합 등 '반동성애 집단'의 "퀴어행사 중지 요구"를 나열한 것입니다.
국민일보는 서울시의 6월 퀴어축제 신고 수리에 많은 보도를 냈습니다. 국민일보 <단독/청와대 국민청원 "6월 서울광장 퀴어행사 승인 철회해 주세요">(3/26 유영대 기자)는 퀴어축제 승인 철회를 요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을 '단독'으로 소개했으며 이어 <"서울광장 퀴어행사 취소해 달라" 청와대 국민청원 6만명 넘어>(4/5), <"6월 서울광장 퀴어행사 사용승인 철회를"... 국민청원 6만여명 동의>(4/6)는 연일 그 청원에 몇 명이 동의했는지 전했습니다.
사실관계 얼버무리고 '왜 퀴어축제만 승인하냐' 주장
국민일보의 이러한 반응은 과도합니다. 특히 서울시가 광화문 집회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불허하면서 퀴어축제만 허용한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겁니다.
서울광장은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어 국민일보가 3월 26일자 보도에서 딱 두 마디 보장해준 서울시 반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례상 원칙적으로 서울시가 수리해야 합니다.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위한 서울광장 사용 신청이 접수된 것은 3월 10일이고 개최 예정일은 6월 12~13일이었습니다.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2월 10일부터 4월 30일까지 서울광장 사용신고를 접수받지 않았고, 5월 1일 이후 개최되는 행사에 대해서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사용신고 수리된 행사가 취소될 수 있음'을 고지하고 사용신고서에 이에 대한 동의를 받아 접수‧수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 절차대로 신청을 수리했을 뿐입니다.
반면 광화문광장은 서울광장과 달리 허가제로 운영되어 서울시장이 조례상의 각종 조항에 부합하는지 검토 후 허가 여부를 결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일보가 인용했던 한국교회연합에서 불만을 표한 '불허된 광화문 집회들'은 바로 전광훈 목사가 중심이 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의 집회였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전광훈 목사 석방 및 문재인 하야 집회'는 서울시의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협조 요청을 계속적으로 무시하면서 2월부터 강행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도 집회를 금지시킨 것이며, 요건에 따라 광화문광장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국민일보는 행사의 성격과 목적은 물론 시기마저 다른 두 사안을, 심지어는 운영 방식이 다른 두 광장의 두 행사를 억지로 대조하면서, '서울시가 퀴어축제 편을 든다'는 프레임을 만든 겁니다. 이는 전형적인 혐오의 방식입니다.
총선 국면에서 기독자유통일당 행보 적극 소개
국민일보는 뚜렷하게 성소수자 차별 의도를 지닌 기독자유통일당의 입장을 보도하는 데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국민일보 <기독자유통일당 "동성애 옹호 차별금지법 제정 NCCK 규탄">(4/22)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이단사상을 옹호해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들을 보호하는 내용"이라는 기독자유통일당의 입장을 받아썼습니다. 국민일보 <부정선거 의혹 제기 논평 낸 기독자유통일당 "정부 해명하라">(4/20), <내달 총선서 '기독' 이름 정당 기독자유통일당이 유일>(3/29) 등 선거를 앞두고 기독자유통일당의 행보를 집중 조명한 보도들도 두드러집니다.
선거를 앞두고 성소수자 혐오 기조를 보여왔던 기독자유통일당을 반복적으로 다룬 것입니다.
다양한 정체성 '동성애자'로 취급, '비참한 말로' 규정하기도
국민일보가 꼭 최근에만 이런 보도를 낸 것은 아닙니다. 2016년 국민일보의 1면 머릿기사 <단독/"동성애는 사랑이 아닙니다. 혼자 늙고 결국엔 비참해집니다">(2016/8/10)는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한 대표적 사례로서 논란이 됐습니다. 국민일보는 초기 트렌스젠더로 알려진 고 김유복씨의 일대기와 발언들을 조명하면서 '동성애는 불행의 씨앗', '동성애는 극복 대상', '동성애의 처참한 말로' 등 차별적 시선을 망라했습니다.
심지어 국민일보가 '단독'을 붙여 1면에 낸 이 기사는 이미 2015년부터 반동성애 진영에서 대부분 알려진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일보는 김유복씨를 소개한 첫 문단부터 "탈(脫)동성애의 '산증인' 김유복(75)씨"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초기 트랜스젠더"라는 다음 문단의 설명과 모순입니다.
미디어오늘 <국민일보의 동성애 혐오, 기본 팩트조차 틀렸다>(2016/8/18)가 지적하듯 김유복씨는 "생물학적 성(sex)은 남성이지만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은 여성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과거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고 가슴 확대 수술까지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즉, 김씨는 성정체성이 여성으로서 남성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성애자인데, 국민일보는 이러한 구분 없이 '동성애자'로 쓴 겁니다. 모든 성소수자들을 '동성애자'로 묶어 터부시하는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국민일보가 이 기사에서 "동성애의 말로는 비참하다. 결혼도 못 하고 늙고 추해진다", "동성애의 끝은 아무도 없는 외로움뿐이다.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와 같은 김유복씨 발언, 반동성애단체들이 2015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니다'를 강조하면서 김씨가 겪은 고난과 가난이 마치 '동성애' 때문인 것처럼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김유복씨 건강 악화의 원인은 허리디스크 수술이 잘못된 탓이 결정적이었는데 국민일보는 이를 "수술을 받은 김씨는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됐다"고만 처리하면서 "봉사자들이 대소변을 받아내며 그를 돌봤다"는 식으로 '비참한 말로'만 부각했습니다.
동시에 반동성애 단체 다큐멘터리 출연 계기가 "동성애자들과 그 가족의 아픔과 삶의 고통을 알리고 '동성애는 치유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라며 '동성애는 치유해야 할 무엇'으로 규정한 것이죠.
김유복씨처럼 생의 말미에서 신체적 고통을 겪은 사람이면 누구나 후회와 회한의 말을 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 동성애 자체를 질병, 고통의 씨앗으로 몰아가는 것은 '혐오'입니다. 미디어오늘은 이를 꼬집어 "현재의 불행이 과거의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일보는 한 노인이 겪은 수많은 고난 중 유독 '동성애 때문'이라는 이성애자의 말에만 주목했다.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말할 수 없듯이, 성 정체성이 그를 불행하게 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습니다.
한겨레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보도에도 등장한 국민일보
이뿐만 아니라 국민일보는 2018년 한겨레가 에스더기도운동의 반복적 허위조작정보 유포를 고발한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보도에도 등장했습니다.
한겨레는 에스더기도운동을 통해 허위조작정보가 퍼지는 과정을 짚었고, 이 과정에서 "에스더가 주관하거나 깊이 관여하는 다양한 행사에 반복해서 주요 강연자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익명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해당 인물들 중 일부 인원이 한겨레의 보도가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 중에는 국민일보의 백상현 기자와 앞서 소개한 국민일보 기사에 인용된 부산대 길원평 교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올해 2월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12부는 한겨레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백상현 기자, 길원평 교수 등이 실제 에스더기도운동 주최 행사에 수차례 강연자로 참석했다는 점과 함께 이들의 주장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판결을 내렸습니다.
해당 판결문을 입수해 보도한 뉴스앤조이 <'캐나다 항문 성교 교육'부터 '네덜란드 수간 합법화'까지... 법원, 반동성애 주장 '허위 정보' 판단>(2/21 최승현 기자)에 따르면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 반대 발언은 금지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동성애 반대론자의 발언은 차별금지법에 따라 처벌된다." - 국민일보 백상현 기자(판결문 8쪽)
"동성애를 비윤리적이라고 표현하면 처벌받는다",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인식할 때까지 처벌해 그 생각 뜯어고치겠다는 무서운법." - 부산대 길원평 교수(판결문7쪽)
"동성애를 정상으로 공인하는 외국은 성교육 시간에 동성애 동영상을 보여 주고 동성애 하는 방법까지 가르친다. 캐나다 토론토는 7학년(12세) 때 이성간 성행위 및 '항문 성행위'를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동성애는 매우 좋은 것이며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해야 한다'고 가르쳐서 강제적으로 세뇌시킨다." - 부산대 길원평 교수(판결문 8쪽)
법원은 두 사람의 주장에 대해 "당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 따르면 단순히 동성애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7학년을 대상으로 성관계 시 동의 여부나 성병 전염 경로를 교육하면서 구강성교와 항문 성교를 언급하는 것일 뿐, 성행위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일보의 기자와 취재원이 허위조작정보를 반복적으로 유포한 단체에서 강연을 한 것도 모자라 직접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입니다.
코로나19마저 성소수자 혐오에 동원한 언론, 갈 길이 멀다
우리 언론에서는 여전히 에이즈의 원인이 모조리 '동성애' 때문이라는 식의 왜곡 보도가 버젓이 나오고 있으며 성적지향과 무관한 사건에서도 굳이 '동성애자'임을 부각해 시선을 끄는 기사들이 많습니다. 국민일보는 그런 언론사들 중에서도 대표적입니다. 국민일보는 특정교계가 사주인 언론사입니다. 그러나 사주가 누구이건 언론이 특정 종교의 기관지가 아니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종합일간지라면, 신문윤리강령과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여러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합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강령은 제2조 언론의 책임에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수호"를 명시하고 있으며, 제3조 언론의 독립은 "언론이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외부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주성을 갖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를 배격하고 질병처럼 폄훼하는 기사들이 과연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것인지, 사주가 속한 특정 교계의 '반동성애' 행태에 복속된 것은 아닌지, 국민일보 언론인들은 되돌아봐야 합니다.
인권보도준칙 제8장 성적 소수자 인권은 "언론은 성적 소수자를 특정질환이나 사회적 병리현상과 연결짓지 않는다"라며 명확하게 국민일보와 같은 보도 태도를 금하고 있죠. 코로나19마저 성소수자와 연결한 우리 언론계 전반이 성찰해야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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