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광주 북구 5.18국립묘지에서 온라인 기념식을 진행하고 있다.
독자제공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으로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해외동포 기념식에서 연대와 포용으로 상징되는 '광주 정신'을 강조했다. 광주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대구에 보여준 방역 연대와 닿아 있는 메시지였다.
김 의원은 18일 광주 북구 5.18국립묘지에서 진행된 이날 기념식에서 "제가 있던 대구가 직격탄을 맞았다. 확진자를 수용할 병상이 제한적이니, 자가격리 시킬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때 광주가 첫 손을 내밀었다.
빛고을병원, 전남대 병원을 비워 병상을 내주셨다"고 말했다.
"광주는 대속의 십자가... 처절한 희생 치르고도 품 넓어"
"처절한 희생을 치르고도 광주는 품이 넓다"고도 했다. 그는 "광주는 희생당했기에 포용할 수 있고, 소외당했기에 연대하는 법을 익힌 듯하다"면서 "40년이 지났지만 나눔과 연대의 5월 광주정신은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광주는 영원하다"고 강조했다.
5.18 참상의 도화선이 된 40년 전 서울역 회군을 회상하며 끝까지 시위 해산을 막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광주의 비극은 서울역 회군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의 봄을 무산시킨 저는 비겁했다. 모두 함께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싸웠어야 했다"고 후회를 전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광주만 홀로 싸웠다. 그 후로도 광주는 오랫동안 숨죽인 채 살아야 했다. 5월 광주가 남긴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채 유가족과 부상자들은 오랫동안 고립되고 상처받아야 했다"면서 "광주는 대속의 십자가로, 처절한 희생을 치르고도 품이 넓다"고 말했다.
메시지는 다시 코로나19 위기 극복으로 나아갔다. 김 의원은 "5월 광주가 임을 위해 행진했듯이,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행진하자"면서 "대한민국이 코로나19방역의 모범국가이자, 세계1등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내일을 위해 다시 행진해 나가자"고 제언했다.
이날 온라인 기념식은 영상회의 서비스인 줌(zoom)을 통해 미국 워싱턴DC, 일본 도쿄 등 세계 50개 도시 99명과 연결되어 진행됐다(
관련기사 : 김부겸, 5.18 당일 광주행... 5.18묘역서 '온라인 기념식' http://omn.kr/1nmdo).
아래는 기념사 전문이다.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해외동포 온라인 기념식
- 오월 광주 정신은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
존경하는 재외동포 여러분!
지금 광주 망월동 5.18 묘역은 정오입니다.
먼 이국땅에 계신 여러분은 아마 새벽 또는 한밤중일 것입니다.
그 멀리서 여러분들이 5.18 추모식에 함께 해주고 계십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여러분은 저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동포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는 지난 토요일 5월 15일부터 사흘째 광주에 머무는 중입니다.
40년 전인 1980년 5월 15일, 저는 서울역 앞에 있었습니다.
'서울의 봄'이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저는 5월 초부터,
아크로폴리스에서 집회가 열리면 연설을 했습니다.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우리 다 두렵다. 나도 무섭다.
그러나 우리 가슴 속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것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다 함께 일어섰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니 끝도 함께 내자.
나만 물러서는 비겁을 떨치자'고 호소했습니다.
14일과 15일 서울 시내는 학생들로 꽉 찼습니다.
최루탄 연기가 하늘을 가렸습니다.
공수부대가 잠실 쪽으로 들어와 숙영 중이라느니,
관악산을 넘어오고 있다느니 하는 소문이 횡행했습니다.
15일 오후 늦게 서울역 앞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려진 결론이 소위 서울역 회군입니다.
저는 해산에 반대했습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희생이 불가피하더라도 여기서 버티고 싸워야 한다.
아무리 신군부라 해도 쉽게 총부리를
국민에게 들이대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회군은 결정되었고, 시위를 풀어야 했습니다.
광주의 비극은 서울역 회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의 봄을 무산시킨 저는 비겁했습니다.
서울에서 싸웠어야 합니다.
대구에서 부산에서 모두 함께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싸웠어야 했습니다.
죽더라도 대학생들이 죽었어야 합니다.
피를 흘리더라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흘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광주만 홀로 싸웠습니다.
광주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광주가 철저히 고립당했습니다.
광주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습니다.
누군가의 성실한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착한 아들과 딸들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습니다.
신군부의 잔악무도한 총칼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 후로도 광주는 오랫동안 숨죽인 채 살아야 했습니다.
5월 광주가 남긴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채
유가족과 부상자들은 오랫동안 고립되고 상처받아야 했습니다.
진실은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받았습니다.
그러나 서슬 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우리 국민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곧 민주화운동이 되었습니다.
광주의 아픔은 많은 이들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부채감이었습니다.
조금이나마 그 빚을 갚기 위해 나섰던
온 국민의 작은 용기가 대한민국을 민주화로 이끌었습니다.
5월 광주의 정신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혁명을 이끌었습니다.
광주는 대속(代贖)의 십자가입니다.
처절한 희생을 치르고도 정작 광주는 품이 넓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3월 초부터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했습니다.
특히 제가 있던 대구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확진자를 수용할 병상이 제한적이니,
자가격리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광주가 첫 손을 내밀었습니다.
빛고을병원, 전남대 병원을 비워 병상을 내주셨습니다.
당시 나온 광주 공동체 특별 담화의 한 구절입니다.
"1980년 5월 광주가 결코 외롭지 않았던 것은
광주와 뜻을 함께해 준 수많은 연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가 빚을 갚아야 할 때이다."
광주 오월어머니집에서도
맛있는 주먹밥 도시락을 만들어
대구 동산병원 의료진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전라도 어머니들의 음식 솜씨는
아마 여러분도 여전히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광주는 희생당했기에 포용할 수 있고,
소외당했기에 연대하는 법을 익힌 듯합니다.
광주는 어머니 같습니다.
온갖 서러움 다 당하고도
그 상처 보듬어 안고
사랑만 주는 어머니 같은 광주입니다.
그래서 저는 광주가 늘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어제 아침 일찍 망월동에 다녀왔습니다.
속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희생에 힘입어
오늘 저희가 세계 1등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저희가 앞으로
더 좋은 나라 만들겠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아마 여러분의 마음도 저와 같을 것입니다.
40년이 지났지만 나눔과 연대의
5월 광주 정신은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광주는 영원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함께 부를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5월 광주가 임을 위해 행진했듯이,
우리 모두 다시 한번 행진합시다.
대한민국이 세계에 우뚝 서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의 모범국가이자,
세계 1등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내일을 위해 다시 행진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국회의원 김부겸
2020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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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겁했다" 40년 전 떠올린 김부겸의 '광주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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