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용산구의원 출마당시에 선거캠프 자원봉사자가 찍어준 사진. 웃는 모습이 너무 선해 보인다.
이원영
내가 알고 있던 이원영의 과거가 이렇게 화려(?)할 줄은 미처 몰랐다. 선거에 세 번 나간 건 알고 있었지만, 전교조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국회의원 보좌관을 한 건 잘 몰랐다.
용산시민연대는 지역의 여러 가지 문제에 열심히 연대하는 단체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상경마장 반대 싸움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 싸움이 얼마나 힘든 싸움인 줄 아니까. 그곳에 용산시민연대가 있었고, 이원영이 있었다. 솔직히 감격했다. 마음 속에는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도 있었다.
"화상경마장 반대 싸움에서 이긴 건 지역의 여러 시민단체와 학부모, 종교시설, 성직자들이 함께 이루어 낸 결과야. 매주 주말 경마장 앞에서 시위했거든. 사계절 중에서 봄하고 가을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여름하고 겨울은 덥고 추워서 정말 힘들었어. 겨울에는 칼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었거든. 2015년부터는 아예 농성장을 꾸려서 싸웠어. 말이 5년이지 정말 엄청나게 힘들었던 기억이 나.
용산시민연대에서 활동한 것 중에 또 하나 의미 있었던 게 뭐냐면,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한 거야. 박근혜 정부 시절에 국정교과서 만든다고 할 때,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운동을 많이 했어. 용산에서도 이걸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캠페인하고 모금운동을 했어. 소녀상 건립에 5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데 1천 명 정도가 모금에 참여했어.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 이름을 동판에 넣었지. 정말 감동이었어."
실로 스펙타클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아웃이 괜히 온 게 아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가을부터 왔다던 번아웃이 최근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지만 쉬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여전히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고민이 많아. '시민단체 활동을 중단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고맙게도 친환경무상급식본부에서 '반상근을 할 수 있냐'는 요청이 왔어. 지금 일주일에 세 번 그곳에서 반상근을 하고 있어. 용산시민연대에서는 후원회원이 많지 않아 활동비를 50만 원밖에 못 받거든.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들도 밥 먹듯이 아르바이트를 해.
얼마 전에 처가로 들어갔어. 전세 만기가 되어 연장해야 하는데 재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시골집이라 비싸지 않은)을 상속받았어. 그것 때문에 무주택 전세대출이 안 된다는 거야. 할 수 없이 염치 불고하고 장모님 댁으로 들어갔지. 주변 사람들이 '겉보리 서말만 있으면 처가살이는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처가댁으로 들어가는 걸 말렸어. 하지만 나는 좋아. 일단 빚을 다 갚아서 홀가분해. 장모님께도 감사하고. 이제 가족들하고 보내는 시간을 좀 늘리면 되는데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야."
모든 활동가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이원영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 시간적 여유 없음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 말이다. 그러면서도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그 이유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갑자기 닥친 지구적인 재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