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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대가로 돈을 요구한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교폭력 분투기⑤] 돈으로 일을 해결하는 시대에 사는 아이들

등록 2020.07.16 14:07수정 2020.11.0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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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와중에 정신없이 등교 지도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쉴 틈도 없이 옆 학교 학생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이가 때린다고 협박하여 아이가 너무 무서워한다는 내용이었다. 죄송하다고, 숨김없이 조사해서 연락 드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연락받은 내용과 조사할 내용을 말씀드리고, 점심시간에 아이를 학생부로 보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런데 2교시 후, ○○이와 이야기해 본 선생님은 아이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의 잘못이라고, 증인도 있다고 말했다고 하셨다. 그러리라 예상했지만 답답했다.

경험상 바로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사실 확인을 하나 싶었다. 내 아이가 하는 말이니, 게다가 증인도 있다고 하니 혹시 학교 간 진실 게임이 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내 아이라고 내 아이 말만 믿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사하리라 다짐했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 
 
 학교 폭력을 다룬 JTBC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위 기사와 사진은 관련이 없습니다.)
학교 폭력을 다룬 JTBC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위 기사와 사진은 관련이 없습니다.) JTBC
 
아이는 점심을 먹고 심각한 얼굴로 학생부실로 왔다.

"○○아, 작년에 선생님이랑 수업해 봐서 선생님 잘 알지? 그리고 지금 선생님이 왜 오라고 했는지도 알지?"
"네, 선생님."

"선생님은 네가 지난 일을 감추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중요한 거는 지금부터야. 그러니 사실대로 했던 일은 했다고 하고, 안 한 일은 안 했다고 하자, 알았지?"
"네."
"그럼 이 종이에 △△와 있었던 일을 숨김없이 써. 감추지 말고."


아이는 10분도 안 돼서 종이를 내밀었다. 상대방이 패드립(부모를 욕하는 말)을 했고, 그게 화가 나서 사과를 요구했다. 그래서 사과를 받았지만, 그 사과가 장난 같아 상대방을 때린다고 했지만 그건 장난이었다고 했다. 실망스러웠다. 상대방이 잘못한 부분은 과장하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장난이었다고. 더욱이 용서의 대가로 돈을 요구한 부분은 감추고 있었다.


"○○아, 선생님이 알고 있는 거와 많이 다른데... 네가 용서의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고 하던데 맞니?"

아이는 그제야 자신이 상대의 패드립으로 스트레스 받은 부분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요구했음을 인정했다. 또 상대방이 자신이 요구한 돈보다 적게 준다고 해서 찾아가 때린다고 한 것도 인정했다. 하지만 진짜로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아이가 쓴 사실확인서를 읽으며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용서의 대가'로 돈을 요구한 거였다.

"○○아, 선생님도 상대방이 부모님을 욕하는 패드립을 하면 화가 났을 거야. 그래서 네가 화를 내고 사과를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또 상대방 사과가 부족하다고, 진심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의 감정을 넌 돈으로 받으려고 했고 상대가 원하는 만큼 주지 않자 때린다고 협박했어. 선생님은 그 부분이 실망스러워."
"죄송해요, 근데 정말로 받을 생각도, 때릴 생각도 없었어요."


"○○아, 그렇게 여러 번 카톡을 보내고 또 다른 친구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상대가 네 말을 장난으로 생각했을까? 무엇보다 너의 감정은 정말 소중한 거야. 그걸 돈으로 계산하고 평가하고 더 받으려고 하는 건 너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니? 선생님이 너에게 돈을 주면 네 감정을 살 수 있니? 그건 아니잖니?"

점심시간이 끝나 종례 후 다시 오라고 하고 아이를 교실로 돌려보낸 후에도 복잡한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아무리 돈이 중요한 시대라고 하지만 열네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벌써 어른들 흉내를 내고, 또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대화와 용서보다는 돈으로 평가하고 해결하는 어른들을 보며 배운 아이들을 탓하기만 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가르쳐야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사회가 변하지 않고 아이가 변할까? 답답했다. 안 될 것 같았다. 나 자신이 한없이 무기력하게 생각됐다. 당장 종례 후 찾아올 ○○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막막했다. 이야기한다고 아이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종례 후 찾아온 아이는 내 예상과 다르게 숨김없는 사실확인서와 진실한 반성문을 써왔다. 아이를 함부로 재단하고 멋대로 아파했던, 또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아이를 문제시하는 '병'이 들어 버린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

○○이는 오늘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진 나에게 아이들은 떼 묻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순수해서 포기하지 않고 가르치면 어른들과는 다른 바른길로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안하고 고맙다.
#학교폭력 #어른 흉내 #물질 만능 #가르침 #사회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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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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