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자은도 백길해변의 해넘이. 부산에서 해돋이를 주로 보고 살았던 서상현·권성옥 씨 부부를 매료시킨 서남해안의 해넘이 풍경이다.
이돈삼
시나브로 섬 아지매로 녹아들다
경상도 아지매의 전라도 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반도의 남단 동쪽 끝에서 서편 끝자락까지 와서 사는 이유에 대한 주변의 궁금증은 한동안 벽으로 작용했다. 서로 다른 말투와 억양 탓에 얘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날마다 섬과 바다를 만나고, 일몰을 대하는 건 큰 축복이었다. 바다에서 얻은 갯것들의 깊은 맛도 행복하게 했다. 철따라 나오는 병어, 민어, 꽃게, 갑오징어도 자갈치시장의 것과 달랐다. 갯벌에서 햇볕과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천일염과 잘 숙성된 젓갈의 맛에도 익숙해져 갔다. 시나브로 섬을 알고 섬사람들을 이해하는 '섬 아지매'로 변했다.
"갯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요. 부드럽게 구부러지는 갯골 풍경이 소름 돋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속으로 하염없이 울기도 했어요. 그동안의 내 생활이 직선만 고집했는지, 내 이익만 생각한 건 아닌지 반성도 하고요. 아직도 섬과 섬사람들의 생활을 알아가는 과정이지만, 날마다 행복해요. 조금 더 일찍 올 걸 하는 생각도 든다니까요."
서해의 일몰을 바라보던 그의 뒷모습이 한없이 평온해 보인다. 우리 인간은 늘 직선을 고집하는데, 자연은 언제나 곡선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속도에서 한발 비켜서 마음의 짐 다 내려놓고 느림의 미학을 체험하고 실천하는 그에게서 엿보이는 평안이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엔 2년만 살아보자고 왔어요. 한번 가서 살아보고, 여의치 않으면 돌아갈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올해 6년째 살고 있습니다. 딸이 살고 있는 부산에 어쩌다 한 번씩 가는데,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빨리 내집으로 가고 싶고요. 이제 저도 어엿한 전라도사람, 섬사람이 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