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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자랑하는 게 일인 '부산아지매'

[인터뷰] 신안에 이주해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부산토박이 권성옥씨

등록 2020.07.21 20:43수정 2020.07.2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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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성옥 전남문화관광해설사가 지난 7월 5일 '무한의 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신안 자은도의 할미섬에서 신안군지도를 펴놓고 관광객들에게 지역을 설명하고 있다.
권성옥 전남문화관광해설사가 지난 7월 5일 '무한의 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신안 자은도의 할미섬에서 신안군지도를 펴놓고 관광객들에게 지역을 설명하고 있다.이돈삼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왜 안 그러겠어요? 경상도 말씨를 쓰는 아지매가 나와서, 전라도 얘기를 하는데… 근데,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 자랑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제가 경상도 말투로 전라도 자랑을 하니까요. 신뢰도가 더 높다고 해야 할까요?"


권성옥(64·전남 신안군 지도읍) 전남문화관광해설사의 말이다. 권씨는 한반도의 서남단, 신안에서 살며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남편(서상현·72)도 함께하고 있다. 부부 해설사다. 올해 3년째다.

"재작년에 해설사 교육을 받았습니다. 신안군의 '내고장 알리미'로 활동하다가 해설사 권유를 받고, 선생님(남편)과 함께 교육을 받았어요. 소문에 의하면, 교육점수도 좋았다고 합니다. 저희 부부는 매사에 얼렁뚱땅하지는 않거든요."

권씨가 환하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전남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권성옥·서상현씨 부부를 우연히 만났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지난 7월 5일 신안 자은도에 있는 둔장해변에서다. 둔장마을에서 할미섬까지 나무다리로 연결된 '무한의 다리'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다. 전통의 고기잡이 방식인 후리질과 백합·조개·고둥 채취 체험도 할 수 있는 어촌체험마을이다.
  
 신안 자은도의 둔장해변과 할미섬을 연결해주는 무한의다리.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 개통 이후 많은 사람들의 찾고 있는 곳이다.
신안 자은도의 둔장해변과 할미섬을 연결해주는 무한의다리.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 개통 이후 많은 사람들의 찾고 있는 곳이다.이돈삼
 신안 자은도의 할미섬에서 만난 서상현·권성옥 씨 부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지만, 지금은 둥지를 전남 신안으로 옮기고 전남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신안 자은도의 할미섬에서 만난 서상현·권성옥 씨 부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지만, 지금은 둥지를 전남 신안으로 옮기고 전남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이돈삼

어딨는지도 몰랐던 신안, 이삿짐을 꾸렸다

권성옥·서상현씨 두 사람은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서씨는 음악전문 입시학원을 30년 동안 운영했다. 교회합창단을 지휘하고 음악 해설, 음반 수집 등의 활동을 해왔다. 권씨는 한때 초등교사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또 다른 음악학원을 경영했다. 두 딸도 바이올린과 첼로를 전공하고 전문 음악인으로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전원생활을 꿈꿔 왔어요. 나이가 들수록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벗어나고도 싶었습니다. 스트레스 많이 받았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가 싶더니 우울증까지 생기더라고요."

권씨의 말이다.


이들 부부는 전원으로 거처를 옮겨 보기로 하고, 마땅한 지역을 찾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지역보다는, 탁 트인 바닷가에 눈길이 더 갔다. 신안이 이들의 정보망에 걸렸다.

"신안이 어디에 있는 곳인지도 몰랐어요. 내비게이션에 입력을 하고 무작정 길을 나섰죠. 아주 멀더라고요. 서너 시간을 달려서 무안을 지나는데, 색다른 붉은 황토 풍경이 펼쳐졌어요. 황토밭을 보는 순간,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면서 흥분되더라고요."
  
 서상현·권성옥 씨 부부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무안의 황토밭. 빨간 황토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상현·권성옥 씨 부부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무안의 황토밭. 빨간 황토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는 모습이다.이돈삼
 서상현·권성옥 씨 부부를 매혹시킨 신안의 갯벌과 갯골. 무안과 신안 일대의 갯벌은 끝도 없이 펼쳐져 '개평선'으로 불린다.
서상현·권성옥 씨 부부를 매혹시킨 신안의 갯벌과 갯골. 무안과 신안 일대의 갯벌은 끝도 없이 펼쳐져 '개평선'으로 불린다.이돈삼

권씨 부부를 처음 매료시킨 건 무안의 황토였다. 낮은 구릉의 황토밭에서 자라는 마늘과 양파를 봤다. 그 구릉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도 황홀경이었다. 하룻밤 묵으면서 만난 신안 증도와 화도의 갯벌도 매혹적이었다.

"갯벌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데, 그 자연스러움과 도도함에 압도가 됐습니다. 바다의 속내를 다 드러내며 보여주는 갯벌, 그 갯벌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갯골, 그 속에서 살아가는 무수한 생물들… 그날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해요."

부산으로 돌아간 이들 부부는 서둘러 이삿짐을 꾸렸다. 태 자리를 뜬다는 건 큰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했지만, 붉은 황토와 갯벌이 가져다준 설렘이 훨씬 더 컸다. 오래 전부터 그리던 해지는 서남해에서의 전원생활이 현실화됐다. 2015년 7월이었다.
  
 '천사의 섬' 신안으로 옮겨 살고 있는 '부산갈매기' 권성옥 씨의 그림 솜씨. 주변의 바다 풍경을 보고 그린 것이다.
'천사의 섬' 신안으로 옮겨 살고 있는 '부산갈매기' 권성옥 씨의 그림 솜씨. 주변의 바다 풍경을 보고 그린 것이다.이돈삼
 신안 자은도 백길해변의 해넘이. 부산에서 해돋이를 주로 보고 살았던 서상현·권성옥 씨 부부를 매료시킨 서남해안의 해넘이 풍경이다.
신안 자은도 백길해변의 해넘이. 부산에서 해돋이를 주로 보고 살았던 서상현·권성옥 씨 부부를 매료시킨 서남해안의 해넘이 풍경이다. 이돈삼

시나브로 섬 아지매로 녹아들다

경상도 아지매의 전라도 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반도의 남단 동쪽 끝에서 서편 끝자락까지 와서 사는 이유에 대한 주변의 궁금증은 한동안 벽으로 작용했다. 서로 다른 말투와 억양 탓에 얘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날마다 섬과 바다를 만나고, 일몰을 대하는 건 큰 축복이었다. 바다에서 얻은 갯것들의 깊은 맛도 행복하게 했다. 철따라 나오는 병어, 민어, 꽃게, 갑오징어도 자갈치시장의 것과 달랐다. 갯벌에서 햇볕과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천일염과 잘 숙성된 젓갈의 맛에도 익숙해져 갔다. 시나브로 섬을 알고 섬사람들을 이해하는 '섬 아지매'로 변했다.

"갯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요. 부드럽게 구부러지는 갯골 풍경이 소름 돋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속으로 하염없이 울기도 했어요. 그동안의 내 생활이 직선만 고집했는지, 내 이익만 생각한 건 아닌지 반성도 하고요. 아직도 섬과 섬사람들의 생활을 알아가는 과정이지만, 날마다 행복해요. 조금 더 일찍 올 걸 하는 생각도 든다니까요."

서해의 일몰을 바라보던 그의 뒷모습이 한없이 평온해 보인다. 우리 인간은 늘 직선을 고집하는데, 자연은 언제나 곡선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속도에서 한발 비켜서 마음의 짐 다 내려놓고 느림의 미학을 체험하고 실천하는 그에게서 엿보이는 평안이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엔 2년만 살아보자고 왔어요. 한번 가서 살아보고, 여의치 않으면 돌아갈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올해 6년째 살고 있습니다. 딸이 살고 있는 부산에 어쩌다 한 번씩 가는데,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빨리 내집으로 가고 싶고요. 이제 저도 어엿한 전라도사람, 섬사람이 되나 봅니다."
  
 신안 자은도의 할미섬에서 만난 권성옥 전남문화관광해설사. 그가 6년 만에 "어엿한 전라도사람, 섬사람이 다 됐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신안 자은도의 할미섬에서 만난 권성옥 전남문화관광해설사. 그가 6년 만에 "어엿한 전라도사람, 섬사람이 다 됐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립니다.
#권성옥 #서상현 #전남문화관광해설사 #천사의섬 #부산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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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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