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하구에서 소대원들과 함께(1969. 12. 왼쪽 첫번째 유하사, 네번째 기자.) 멀리 보이는 곳은 북한 경기도 개풍.
박도
당시 우리 중대의 경계지역은 이산포에서 산남리까지 약 6킬로미터의 절반 북쪽 한강 둑을 담당했던 바, 그 둑을 50미터 간격으로 60여 개의 무개호(지붕 없는 초소)를 파서 2인1조로 야간 잠복초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부대 이동 후 그 초소를 보니까 아찔했다.
초병들은 비바람을 조금도 피할 수 없었다. 60여 개의 무개호에 야간 잠복조를 운영하니까 중대 병력의 3/4이 야간 근무 조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병력은 야간 자대 근무를 섰다. 그러자 우리 중대 전 병력이 경계근무를 서는 밤낮이 완전히 뒤바뀐 올빼미 근무로 병사들은 매일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간첩들의 주요 침투로
강둑 무개호 초소는 2명1개조로 일몰부터 다음 날 일출 1시간 전까지 밤샘 잠복 경계근무를 섰다. 강둑 중간 중간 분대장 초소에는 전화가 가설돼 있지만, 나머지 초소에는 새끼로 견인줄을 만들어 상호 연락케 했다. 초소에는 M16소총, 경보 탐지기, 야간조준경 같은 최신 장비도 갖췄다. 그런 최신무기와 새끼줄과 같은 원시무기가 공존했다. 초병들은 비나 눈이 오면 고스란히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상급부대에서는 초병들의 근무 여건과 인권은 전혀 고려치 않은 무지막지한 근무 여건이었다. 다만 수문 위의 주야간 감시 초소만은 원두막처럼 짚으로 지붕이 덮여 있었기에 순찰자들은 중간 거점으로 쓰고 있었다.
남북으로 이어진 강둑에는 철조망이 강과 나란히 이중으로 쳐 있었다. 그 철조망에는 해질 무렵 과수원 울타리 탱자나무에 참새 떼들이 몰려 앉은 것처럼 녹슨 깡통과 조명 수류탄들이 너절하게 달려 있었다. 한강 하류와 임진강 하류가 합수하는 지점 저 멀리 북녘 땅은 날마다 24시간 대남방송이 여울지며 떠듬거렸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는 하구 지대는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남파하기 가장 쉬운 곳으로 임진강 하구 북한의 개풍 강안에서 조수가 들어올 때 고무보트를 타고 가만히 있어도 30분 정도면 우리 측 한강 하류에 닿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일대는 그 무렵 간첩들의 주요 침투로였다. 특히 1·21 사태 이후 우리 군에서 경계를 부쩍 더 강화시킨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