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졸업장본적이 이름보다 위에 적혀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졸업장은 내 정체성이 경상북도에 두고 있다 말한다.
강대호
어릴 적에는 '본적(本籍)'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무슨 서류를 쓸 때도 현주소보다 먼저 본적을 적어야 했다. 지금도 '경상북도 상주군 중동면'으로 시작하는 내 첫 본적을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어릴 때는 고향이 경북 상주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 역시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 나를 본적만으로도 경상도 출신으로 대우하곤 했다.
1983년, 고등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이었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같은 반 친구 집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함께 봤다. 당시 친구는 '해태 타이거스'를 응원했다. 그는 학교에서는 쓰지 않던 사투리를 진하게 구사하며 응원했다. 난 해태에 이어 리그 2위를 달리던 장명부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했다. 물론 그 친구와 경쟁 구도를 만들려고 일부러 그런 체한 것이었다.
친구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내가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그는 나와 우리 가족이 경북에 뿌리를 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대구 연고 팀을 응원하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본 것이다. 난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애착이 그때나 지금이나 아예 없다. 오히려 서울이 연고였던 MBC 청룡이나 OB 베어스에 더 관심이 갔었다.
그렇다면 경상도 출신 부모와 형제를 둔 나,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의 고향은 어디인 것일까. 서울일까 경상도일까.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에 의하면, 고향은 "태어나 자라난 곳, 또는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을 의미한다. 보충적으로는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
기본 의미에 의하면 경북 상주가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이기에 고향이고, 서울 역시 태어나 자라난 곳이기에 고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은 어디일까.
내가 자란 곳은 서울의 세 지역이다. 수유리, 서교동, 그리고 도곡동 혹은 역삼동. 생각해보니 세 지역이 내게 주는 의미가 모두 다르다. 어디가 더 그립다거나 추억이 더 많다는 게 아니라, 자라는 여러 시기 동안 다양한 지역에서 겪은 혼합된 경험 차원의 의미 말이다.
수유리, 지금은 수유동으로 불리지만 내가 어릴 때는 수유리라고들 했다. 거기서 국민학교(그때는 그렇게 불렀다) 1학년 때까지 살았다. 1966년부터 1974년 초까지였다. 그 후 다른 지역에 가서 살아도 수유리 골목길과 개천이 기억나곤 했다.
마포구 서교동에서 살던 동네는 이층집이 즐비했다. 골목을 나서 조금만 가도 아주 큰 길이 있는, 시내버스도 많이 다니는 번화가였다. 분위기가 수유리와는 아주 달랐다. 서교동에서 2학년부터 4학년 때까지,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살았다.
도곡동의 아파트로는 1976년 12월에 이사했는데 몇 년 후 역삼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이사한 즈음 우리 아파트 건너편에는 빈터가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로 빽빽한 단지가 되었다. 거기서 군에 입대할 때까지 살았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였다.
물론 성인이 될 때까지 산 강남에 대한 기억이 많다. 그렇다고 수유리나 서교동에 대한 기억이 없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아주 어릴 때 살았더라도 혹은 몇 년밖에 살지 않았더라도 그곳에서의 기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한다.
집안 고향 말고 나의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