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민들이 지난 6일 저녁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일본학술회의' 회원 후보 6명의 임명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거부한 것과 관련,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700여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학자들의 국회', 일본학술회의
일본학술회의는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지만, 정부와 독립적인 단체다. 문부과학성 소속이 아니라 내각부 소속이며, 정부 자문위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학술회의 전신은 1920년에 설립된 '학술연구회의'다. 일본 패망후 원자폭탄 피해조사연구팀을 조직하는 등 전후에도 활동을 지속했다. 그후 2차대전시 일본 학자들의 연구가 전쟁에 동원된 것에 대한 깊은 반성을 토대로 1949년에 일본학술회의가 만들어졌다. 정리하면, '학문의 관점으로 권력을 가진 정부의 방침에 조언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이다. 일본학술회의의 모든 활동은 '일본학술회의법'에 근거한다.
일본학술회의는 일본 학술연구자 84만 명가량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정회원 210명, 관련 회원은 2000명에 달하는 '학자들의 국회'로 불린다. 회원의 임기는 6년이며 3년에 한 번 정회원 210명의 절반인 105명을 교체하는 시스템이다.
회원 선출 방식은 세 차례 개정이 이뤄져 현재의 방법이 됐다. 1985년 7월(12기)까지는 전국 학자에 의한 직접선거로 회원을 선출했지만, 조직표를 만든다는 우려가 있어 이후 일본학술회의에 등록된 학술학회에서 회원을 추천하는 방법으로 변화를 꾀했다. 그러나 학회 파벌표가 생긴다는 이유로, 2005년부터는 일본학술회의에 설치된 위원회에서 연대회원을 포함한 회원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선정하는 지금 방법으로 개정됐다. 일본학술회의 회원의 선정기준은 "우수한 학술업적과 성과"다. 정치 성향은 정회원 추천·선정 기준과 전혀 관계가 없다.
최근엔 성별, 지역별, 연구 부분에 있어서 보다 공정한 방법을 구축하고 있다는 게 일본학술회의의 입장이다.
전쟁·군사 목적에 학문이 동원되는 걸 경계한 조직
일본학술회의는 패전으로부터 5년 뒤인 1950년에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연구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내놨다. 또한 1967년 베트남전쟁 때 일본 연구자가 미국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은 걸 문제삼고 "군사목적을 위한 과학연구를 하지 않는다"라고 재차 성명을 발표했다.
40년 가까이 지난 2017년 3월, 일본학술회의는 또다른 성명을 발표했다. 이름은 '군사적안전보장연구에 관한 성명'. "연구자는 국가의 안전보장을 군사적 수단으로 실현하는 연구에 관여하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배경은 일본 정부에 있었다. 2015년 일본 정부는 '안전보장기술 연구 추진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대학·연구소·기업 등이 군민양용 기술을 연구·개발할 경우 연구비를 보조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연구 주제는 방위정비청이 직접 정하고, 예산 규모도 점차 커졌다. 제도 도입 첫해 3억 엔, 두 번째 해 6억 엔, 세 번째 해 110억 엔으로 증가했다.
일본학술회의가 '안전보장기술 연구 추진제도'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한 이유는 헌법 23조에 보장된 '학문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연구의 자주성, 자율성, 연구성과의 공개성에 제약을 받는다'는 판단이다. 일본학술회의는 '학술의 연구는 정치권력에 의해 제약을 받아서도 동원이 되어서도 안되며, 연구자의 창의에 의해 자유롭게 돼야 하며, 그래야 학술이 발전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정부의 연구 지원 예산은 커져가는 반면, 대학의 연구 지원 예산은 매년 축소되는 경향이 있어 일본학술회의가 비판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일본학술회의는 과학·학문의 관점으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매년 입장이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일부 일본 언론은 '세금만 낭비하는 나이 많은 학자들의 폐쇄적 모임'이라고 비난하지만, 이는 편향된 보도 태도로 보여진다.
스가에 거부 당한 학자 6명의 공통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