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밀양경찰서 투탄의거 100주년기념 학술회의’.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밀양경찰서 투탄의거 100주년기념 학술회의'가 10일 국가보훈처와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윤일선),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마련해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전성현 동아대 교수가 "밀양지역 일제탄압기구와 투탄의거", 이태룡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의열단 창단과정과 김상윤 의사의 반일투쟁", 이준설 학예연구사가 "의열투쟁과 그 계승을 위하여"에 대해 발제하고, 김영범 대구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아 토론이 이어졌다.
전성현 교수는 "최수봉의 투탄의거 대상지가 왜 밀양경찰서가 되었는지"에 대해 일본의 조선 진출과 침략을 위한 탄압기구 설치, 그리고 이들 탄압기구에 의한 의병진압과 3.1만세의거 통해 살피면서 당시 일본군과 헌병대 배치표를 통하여 일제의 침략상과 함께 밀양투탄의거의 당위성을 강조하였다.
이태룡 소장은 의열단 창단과정과 창단구성원에 대하여 <독립운동사> 제7권과 <독립운동사자료집>,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탑재된 국내외 기록, 학자들의 논저를 살펴 설명했다.
이 소장은 "밀양 3.1만세의거와 관련된 판결문, 부산경찰서.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와 관련된 판결문 등과 일제의 기밀문서를 통하여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있다"고 했다.
이태룡 소장은 지금까지 김원봉의 구술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약산과 의열단>(1947)을 바탕으로 연구를 해온 것에서 벗어나, <일본 외무성기록>을 번역하여 김상윤에 대해 설명했다.
"김상윤은 1925년 2월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일망타진해야 할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광복지사 가운데 이른바 불령선인 56명 중에 한 사람으로, 김구, 김원봉 등과 함께 일본 외무대신이 반드시 체포해야 할 '불령선인 거괴(巨魁) 10인' 중의 한 사람일 정도로 매우 비중이 큰 인물이었다"고 이 소장은 설명했다.
또 이 소장은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사자료집>의 집필진의 실수나 오식으로 인해 제1차 암살파괴계획(밀양폭탄의거)에서 김상윤의 역할은 폭탄투척을 실행할 자로 활약했는데, 김옥(金玉, 김상윤의 가명) 대신 '김상옥(金相玉, 종로경찰서 폭탄투척의거 순국 의사)이 이를 수행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밀양경찰서폭탄투척의거는 일제의 기밀문서에 최경학을 의열단에 가입시키고, 폭탄제조를 한 주인공이 김상윤과 이종암, 고인덕이었는데,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음을 밝혀 포상의 거증자료로 활용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준설 연구사는 의열투쟁 등으로 포상을 받은 현황을 통하여 경남과 밀양지역 독립유공자를 살폈다. 이 연구사는 "항일독립운동사에서 의열투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분야에서만큼은 분단현실 속에 형성된 이념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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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경찰서 투탄의거 100주년기념' 학술회의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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