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xabay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도 언택트가 들어오게 했다. 내가 속한 독서 모임도 원격 화상회의로 만난다. 처음에는 평소 화상 전화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회원들이 화면상으로 만나자 어색해했다.
오디오를 켠 발표자는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 없으니, 혼자 이야기를 하다 보면 뻘쭘한 분위기로 끝나곤 했다. 듣는 사람도 바로바로 반응할 수 없어 답답했다. 대화의 공기(분위기)까지 공유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횟수가 늘어나면서 회원들은 오디오를 적당히 켜고 끄며 토론에 참여하고, 적절히 몸짓(바디 랭귀지)을 사용하기도 한다. 모임 장소에 오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등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하지만 회의 방을 만드는 내 차례가 되자 또 한 번 언택트 산을 넘어야 했다.
구글 아이디로 접속하고 하라는 대로 따라갔는데 갑자기 "캘린더에 일정 세부 정보를 공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당황했다. '왜 내 스케줄을 천하에 공개하라는 거지?', '누구든지 내 스케줄을 알게 된다는 건가?', ' 혹시 비공개로 하면 회의가 개설되지 않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50대 회원 중에는 나처럼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한다. 영어로 된 홈페이지에 들어가 헤매거나, 대학생 자녀에게 하나하나 물어보다 구박을 받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씩 배우면서 우리도 적응해간다.
내가 전자책을 보다니...
언택트는 사람 간의 관계뿐 아니라 물건에 대한 생각도 바꾸게 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공공도서관이 자주 문을 닫았다. 일상 외출도 자제하니 눈으로 보고 책을 고르는 서점에도 발길이 뜸해졌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다가, 공간적 경제적 이유로 전자책 대여를 생각했다. 영화∙TV OTT서비스처럼 정액권을 끊고 무제한으로 대여할 수 있는 전자책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물성이 없는 전자책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책 뷰어(viewer)를 나에게 맞게 설정하니 쉽게 금방 적응되었다. 무엇보다 글자를 아주 크게 키워서 읽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 노안이 와서 작은 활자를 읽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평소 궁금했던 책을 부담없이 펼쳐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모바일로도 연동이 되니 자투리 시간에도 쉽게 책을 읽는다. 필기구 들고 밑줄을 그을 필요도 없다. 손가락으로 드래그만 하면 여러 색깔로 저장된다. 검색 기능도 있어서 내가 원하는 단어를 검색하면 해당 본문을 찾아준다.
전자책은 나이가 들수록 가볍고 단순하게 살자는 내 삶의 명제와도 잘 맞는 듯하다. 디지털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인화된 사진과 두꺼운 앨범이 사라지듯이 어쩌면 종이책도 점점 사라는 것은 아닐까? 김초엽의 SF소설 <관내분실>은 종이책이 모두 전산화된 가까운 미래, 도서관을 죽은 사람들의 기억(마인드)을 보관하는 추모의 공간으로 묘사한다.
1950년대 텔레비전 보급으로 영화관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고, 1980년 비디오(TV)가 라디오를 죽인다고(The Buggles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노래 했지만 극장과 TV, 라디오 모두 공존한다. 종이책과 전자책도, 장소를 제약받지 않는 비대면 회의와 얼굴을 마주한 온기있는 만남도, 주문 앱을 통한 편리한 배달음식과 주방에서 막 만들어낸 식당 음식도 여전히 공존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언택트 환경은 빠르게 진행돼 그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새로운 언택트 환경은 대개 IT 기술적 진화를 바탕으로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 속도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겠지만, 언택트 문화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유연한 사고로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면은 인간적이고 비대면은 비인간적이라는 편향된 사고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만 바뀔 수 있었다. 아직은 문자보다 전화 통화로 목소리 듣는 것이 좋고, 택시 앱보다 여전히 길에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는 나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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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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