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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정년을 맞이했습니다

[정년 퇴직 기념 서울-부산 자전거 국토 종주 프롤로그] '회사의 시간'을 돌려받았다

등록 2020.11.25 15:54수정 2020.11.2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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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정년퇴직했다. 퇴직하면 무지갯빛 세상 만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안다. 회사 조직을 떠나서 홀로의 시간을 어떻게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가늠해보았다. 퇴직은 또다른 시작을 의미하기도하므로 그 새로운 삶을 서울서 부산까지 자전거국토종주로 시작하기로 계획했다. 하루에 약 60여km쯤을 달리는 여정을 함께 나눈다.[기자말]
정년퇴직 축하편지들을 읽자니 마음이 촉촉해졌다. 정년. 평균수명이 늘어난 지금, 정년퇴직을 인생의 유효기간이 다한 것으로 여길 수는 없는 입장이다. 새로운 쓸모를 찾아야 하지만  '조금 더 느슨하게', '세월의 제 속도'를 타고 가는 여백은 고려할 예정이다. 직장의 후배들도, 가족들도 나의 퇴직을 축하했다. 그 축하의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그동안 달려온 시간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니 축하할 일이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볼 틈을 주고 살아보지 않은 삶을 살 기회에 대한 축하이기도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새로운 삶이 나를 어떤 시험에 들게 할지, 어떤 기쁨과 보람을 줄지 참 궁금하다.
정년퇴직 축하편지들을 읽자니 마음이 촉촉해졌다.정년. 평균수명이 늘어난 지금, 정년퇴직을 인생의 유효기간이 다한 것으로 여길 수는 없는 입장이다. 새로운 쓸모를 찾아야 하지만 '조금 더 느슨하게', '세월의 제 속도'를 타고 가는 여백은 고려할 예정이다. 직장의 후배들도, 가족들도 나의 퇴직을 축하했다. 그 축하의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그동안 달려온 시간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니 축하할 일이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볼 틈을 주고 살아보지 않은 삶을 살 기회에 대한 축하이기도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새로운 삶이 나를 어떤 시험에 들게 할지, 어떤 기쁨과 보람을 줄지 참 궁금하다.강복자

정년, 이날이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노동이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방법이고, 살아 있음을 입증하는 존재의 방식이며, 보람을 통해 내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고 여겼다. 내 삶을 가치롭게 만드는 소중한 방법, 이 생각으로 집에서 직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행인 것은 육신이 대부분의 근로를 견딜 만큼 건강했다.

35년 전쯤 오랫동안 정분을 이어오던 지금의 남편이 결혼을 망설일 때, 그 이유를 물었다. "가정을 꾸릴 만한 돈을 벌 자신이 없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답했었다. "그 이유라면 문제없다. 돈을 버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노동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 때문이었다.

정년은 내 존재의 가치라고 여긴 것을 '이제 그만 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시 곱씹어본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정년'. 지금도 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나의 정년은 이 직장에서 노동을 양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다른 형태의 노동을 이어갈 것이다.

정년 전과 후의 차이는 단 한 가지
 
 ?회사의 퇴임식에서 꽃다발을 받으며 기쁨보다 두려움이 먼저 뇌리를 스쳤다. 이제부터는 회사 직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워야 한다. 그리고 개인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때로는 방파제 없이 파도를 감당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파도로 서핑을 즐길 것이다.
?회사의 퇴임식에서 꽃다발을 받으며 기쁨보다 두려움이 먼저 뇌리를 스쳤다. 이제부터는 회사 직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워야 한다. 그리고 개인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때로는 방파제 없이 파도를 감당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파도로 서핑을 즐길 것이다. 강복자
 
우주의 시간은 나의 정년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 연속된 시간을 단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내 자신이다. 나에게 있어 정년 전과 후의 차이는 단 한 가지일 뿐이다. 하루의 내 시간 중 회사에서 8시간의 지분을 가졌다. 이제부터 그 지분을 돌려받아 24시간 내가 운용한다는 것이다. 

내 정년 후의 노동은 이런 형태가 될 것이다. 


1. 서울-부산 국토종단 자전거 여행
2. 섬 살기
3. 산 살기
4. 사찰 기행 및 스님과의 차담
5. 수행 및 명상
6. 아들과 영국 및 유럽 살기
7. 민화 열공과 민화 해외소개
8. 남편과 세계탐험
9. 프리랜서 근로 및 봉사

이 계획들은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중에는 몇 년 전부터 해오던 개인적인 일도 있었으므로 사실 새로운 것은 반도 되지 않는다. 이렇듯 별다른 게 아닌 것을 열거하고 꼽아본 것은 나의 24시간에 대한 관리 책임 때문이다.


돌려받은 시간이 8시간이라지만 전후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업무를 준비하는 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합하면 12시간이 훌쩍 넘는다. 간간이 있었던 업무시간 외 근무까지 합하면 그 이상의 시간이다. 내 하루의 반을 돌려받은 셈이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들 앞에 나태해지지는 않을까를 염려했다. 사람의 속성이 풍족해지면 헤프게 쓴다는데 혹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붙들어 매기 위함이다. 확실한 것은 이 일들의 정년은 내 죽음이 될 것이다.
 
세 아이들과 남편의 퇴직 축하 편지. 맏딸이 어린 눈으로 보았던 나의 출근을 상기시켰다. "내가 요만큼 어릴 적 엄마가 화장실 거울 앞에서 정장을 하고 긴 머리를 돌돌 말아 핀을 탁! 꽂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 멋있다~ 하고 그 모습에 감탄하곤 했는데 제가 서른 중반이 되니 그 모습이 단지 멋지다,라고만 느낄 순 없는 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요."
세 아이들과 남편의 퇴직 축하 편지.맏딸이 어린 눈으로 보았던 나의 출근을 상기시켰다. "내가 요만큼 어릴 적 엄마가 화장실 거울 앞에서 정장을 하고 긴 머리를 돌돌 말아 핀을 탁! 꽂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 멋있다~ 하고 그 모습에 감탄하곤 했는데 제가 서른 중반이 되니 그 모습이 단지 멋지다,라고만 느낄 순 없는 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요."강복자
 
돌이켜보면 감사함뿐이다. 직장이라는 조직 속에서 나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이, 힘든 순간과 다급한 순간들을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 결과 부모와 남편의 어깨를 조금 가볍게 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자신의 날개를 갖게 되기까지 육추를 할 수 있었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정년퇴임식이 끝나고 잠시 슬픔이 밀려왔다. 그것은 정년이 늙음에 더 가깝고 죽음에 한 발 더 다가섰다는 속성도 아울러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였다.

내게 근로는 보람이었지만, 분명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배우고 싶은 것을 미루어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만나고 싶은 사람의 형편에 내가 시간을 맞출 수 없었던 것이 그러하다. 이제 내 시간의 주인은 나고, 내 팔은 온전히 내가 흔들 것이다.

자연의 속도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될 수 있음에 설렌다. 여명에 일어나 기도하고 내 마음속을 깊이깊이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다이아몬드같이 반짝이는 시간 속으로 나의 하루하루를 던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게 포스팅됩니다.
#정년퇴직 #은퇴 #국토종단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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